남편에 대한 아내의 간절한 기다림 김주영의 `홍어
남편에 대한 아내의 간절한 기다림 김주영의 `홍어
  • 북데일리
  • 승인 2007.04.0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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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은 바닷 속처럼 고요했다. 희뿌연 미명과 시간조차 멈추어버린 듯한 방안의 적요는, 새벽잠을 부채질하는 나른한 미약이었다. 미명이라지만, 그것은 날씨가 흐린 날 아침에 일어나는 착각의 요술일 뿐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본문 중)

[북데일리]김주영의 소설 <홍어>(문이당. 2005)를 읽는 내내 책의 매력에 취했다. 열세 살 남자아이와 어머니가 사는 산골 집. 한 겨울 내린 폭설. 그리고 집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 이들의 이야기로부터 소설은 출발한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아침 한 소녀가 이들의 집에 도착한다. 어머니는 이 소녀를 거두기로 결심한다. 소녀의 이름은 삼례. 가족은 그녀를 맞아들이지만 삼례는 겨울이 지나자 갑자기 집을 떠나버린다.

이후 한 남자가 삼례를 찾아온다. 그리고 묘령의 여자와 아기가 도착한다. 여자는 도망치듯 떠나고 아이만 남는다. 어머니는 아이를 맡기로 결심한다.

소설은 이처럼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듯 고요하기만한 산골 집에 정을 불어 넣는가 하면 어느 새 꺼트린다. 새로운 인물과 어머니와의 심리묘사가 쉴 새 없이 교차하는 순간 소설의 진가가 드러난다.

‘홍어’는 어머니의 아버지를 향한 오랜 기다림을 표출하는 상징이다. 바람둥이 아버지를 빗댄 홍어를 사다가 걸어놓는 어머니의 정성. 한 여인의 애절함은 6년을 넘는 시간동안 인고의 세월을 거친다. 마음은 점점 황폐해져 간다.

어머니가 가오리연 만들기를 그만두고 조각보 만들기에 골똘했다는 대목은 큰 변화다. 이 순간이 진정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곪아가고 있다는 징후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한다.

<홍어>는 서정적인 소설이다. 김주영이 아니라면 표현해 낼 수 없는 풍부한 감수성의 문체가 빛을 발한다. 눈 내린 산골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심리묘사는 하나의 수채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여운은 책을 읽은 후에도 오랜 시간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기다림을 통해 가부장제도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의 어머니상이 그려진다. 모든 걸 포용하고 남편만을 위해서 희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섬세한 묘사뿐 아니라, 마지막까지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반전 역시 일품이다. 13살 어린이의 순수한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 시키고 있다는 것이야 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어머니의 오랜 기다림은 슬퍼서 아름다운 것이었고, 좌절과 희생, 권태와 기대, 그리고 때로는 설레는 희열과 어둡고 답답한 환멸과 울적함까지도 모두 버리지 않고 껴안은 섬뜩한 애증이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애타게 눈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어머니가 가진 그 환멸과 모순 덩어리의 사랑을 속속들이 표백당하는 단련을 통해 어디엔가 도달하고 싶은 소망 때문인지도 몰랐다”(본문 중)

[제갈지현 시민기자 galj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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