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명문장] 짜릿한 느낌은 살과 뼈를 훑었다
[책속 명문장] 짜릿한 느낌은 살과 뼈를 훑었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5.11 1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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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 중에서

[북데일리] 하나의 대상을 꾸준하게 좋아하는 것은 어렵다. 대상을 관찰하고 그것에 몰입했을 때 하나가 될 수 있다. 물론 유혹을 물리쳐야만 한다. 책과 문학에 빠진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알에이치코리아.2015)의 주인공이 그러하다. 서재에 대한 묘사만 봐도 그렇다.

‘겉으로는 방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은 그 자신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 그가 책꽂이를 만들기 위해 낡은 판자들을 사포로 문지르자 표면의 거친 느낌이 사라졌다.

낡은 회색 표면이 조각조각 떨어져나가면서 나무 본래의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더니, 마침내 풍요롭고 순수한 질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이렇게 가구를 수리해서 서재에 배치하는 동안 서서히 모양을 다듬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가 질서 있는 모습으로 정리하던 것도, 현실 속에 실현하고 있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143쪽)

급기야 그는 죽을 때까지 책을 놓지 않았다. 생이 끝나는 순간 책과 하나가 되는 장면은 황홀경에 이를 정도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392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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