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중국인과 랴오동지에](상) 노동절 맞은 중국인들의 ‘서울 점령기’
[르포] [중국인과 랴오동지에](상) 노동절 맞은 중국인들의 ‘서울 점령기’
  • 뉴미디어팀
  • 승인 2015.05.1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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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서울 상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한 해를 살아가면서 손꼽아 기다리는 ‘3대 휴일’이 있다. 우리의 설날과도 같은 춘절(春节·춘지에)과 국경일(国庆节·궈칭지에), 그리고 노동절(劳动节·랴오동지에)이다.

중국 노동절도 미국의 메이데이(MayDay)와 같은 5월 1일이기 때문에 ‘五一劳动节(오일노동절)’ 혹은 줄여서 ‘五一’라고 부른다. 본래 미국 등 서양국가의 메이데이 정신을 배우기 위해 중국에서 1918년 군중들에게 노동절을 소개하는 전단지를 돌린 것이 중국 노동절의 시초가 됐다.

노동절이 중국에서 공식연휴일로 지정된 것은 지난 2000년이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중국 정부가 ‘내수경기 촉진’을 목적으로 노동절을 일주일간 ‘장기 황금연휴’로 지정했다. 그 후 2008년 조정을 거쳐 3일 연휴로 줄었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정부가 공식 휴일로 지정한 이후 중국의 노동절은 초기 메이데이의 정신보다는 ‘소비촉진의 날’로 각인됐다. 유통·관광업계는 이를 ‘노동절 특수’라 부르며 한 몫 단단히 잡기위해 벼르는 날이 됐다.

한국은 중국과 가까워 중국 노동절 영향을 특히 많이 받는다. 최근 동북아에서 ‘큰 손’으로 잘 알려진 중국인 관광객들은 여행하기 좋은 3월이 되면 벌써부터 행동을 개시한다.

특히 5월 노동절 연휴가 시작되면 요우커의 씀씀이는 절정에 달한다. 이때가 되면 요우커를 모시기 위한 국내 유통업체들의 마케팅전이 평소보다 치열해지고 인천국제공항은 붐비는 관광객들도 몸살을 앓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황금연휴를 맞아 중국인은 10만 명, 일본인은 7만3000명 등 약 18만 명이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인 관광객의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늘어난 반면 일본인 관광객은 엔화 약세로 지난해보다 11% 줄어든 수치다.

대다수 요우커들이 한국의 수도 서울을 방문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특히 그들이 ‘쇼핑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방문하는 곳은 바로 명동이다. 평소에도 중국인 관광객이 많기로 유명한 명동이지만 노동절 늦은 오후에 방문한 명동은 ‘한국 속 작은 중국’이 아니라 ‘그냥 중국’이었다.

◆ 백화점 곳곳마다 울리는 북경어

황금연휴를 맞아 국외로 떠난 한국인들의 빈자리를 메우기라도 하는 듯 중국인들은 거침없이 명동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도로 가에 주차된 관광버스도 평소보다 늘어났고 ‘Duty Free’가 새겨진 면세점 쇼핑백을 옆에 놔둔 채 쉬고 있는 요우커로 롯데백화점 정문 앞은 발 디딜 틈 없었다.

명동의 쇼핑 1번지 롯데백화점 안으로 들어가 봤다. 롯데백화점 명동 본점의 지하 1층은 크게 가방·구두·보석 매장과 식품 매장으로 나눠져 있다. 이날 가방·구두 매장은 상대적으로 한산해 보였다. 오히려 평소보다 방문객이 더 적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가방매장의 직원은 평소보다 오늘 사람이 더 없는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황금연휴를 맞아 내국인들 대다수가 어디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주변 다른 매장에서 중국인 몇 명이 막 결제 완료한 가방을 들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 매장의 직원은 “오늘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며 “오히려 저번 주에 훨씬 더 많았다”고 말했다.

한산한 모습을 보였던 잡화매장과는 달리 반대편 식품매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중국인이 특별히 관심을 보일 것 같은 차(茶) 매대로 가봤다. 차 매대 직원은 “중국인들에게 녹차가 스테디셀러이긴 하지만 제주도와 관련된 제품, 우엉·인삼차 등 건강과 관련된 제품도 최근 인기가 많다”며 “오늘 평소보다 중국인들이 많이 보였는데 녹차를 많이 찾았다”고 말했다.

최근 내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값비싼 디저트의 경우 중국인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어보였다. 마카롱 매대 직원은 “제품의 특성상 오래 보관하기가 힘들다고 설명해주면 중국인들은 관심을 보이다가도 구매하지는 않더라”고 말했다.

중국인 선호 1위…화장품·의류 ‘싹쓸이’

2층 여성의류매장도 중국인들이 거의 점령했다. 한 무리의 중국인들이 “我今天买了十件衣服可是还不够(난 오늘 옷 10벌이나 샀지만 아직 부족한 것 같아)”, “天啊! 你已经买了十件衣服! 那我们去看看免税店(세상에! 너 벌써 10벌이나 샀다고? 그럼 우리 이제 면세점 가보자)” 등의 대화를 나누며 바쁘게 지나간다.

그들의 대화에 따라 9층 면세점으로 올라가봤다. 올라가는 층마다 중국어로 도배가 돼 있었다. 특히 ‘알리페이로 결제 가능’이라는 중국어 문구가 눈에 띄었다.

알리페이는 등록회원 수가 8억명에 이르는 중국 최대 온라인 결제 회사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달 27일부터 이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9층부터 시작되는 면세점은 그야말로 명동 거리를 그대로 백화점으로 옮겨놓은 듯했다. 요우커들은 촌각을 다투며 물건을 쓸어 담고 있었다. 그들은 Duty Free 쇼핑백 1~2개는 성에 안 차는 듯 3~4개씩은 기본적으로 팔에 걸고 이곳저곳을 바쁘게 오갔다. 덩달아 통역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도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에도 이곳 면세점은 중국인들로 붐비지만 특히 이날은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 정도로 북새통을 이뤘다. 특히 최근 중국내 K-뷰티의 저력을 증명이라도 해주는 듯 아모레퍼시픽 계열의 화장품 매대 앞에는 줄까지 늘어서 있다.

유독 눈에 띄는 제품은 마유(马油·말기름) 함유 화장품. 최근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달팽이 마스크팩보다 마유가 이날의 주인공 이었다. 연신 중국인들이 “这儿有马油精华素吗(여기 마유 에센스 있나요?)”를 외치며 마유크림이나 에센스를 찾아대고 있었다.

면세점 내 화장품 매장의 한 직원은 “평소보다 노동절 연휴동안 매출이 늘어났는지 구체적인 결산을 내봐야 알겠지만 체감 상 오늘 고객들이 많은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노동절 기간 동안 본점의 중국인 매출액(은련카드 기준)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7.5% 증가했다. 또 같은 기간 동안 중국인의 매출 구성비는 지난해 연간 기준(17.2%)보다 1% 포인트 높은 18.2%를 기록했다.

알리페이 결제 서비스가 도입된 지난달 27일부터 5월 3일까지의 결제 건수는 본점 기준 200여건, 구매금액 기준으로는 3000만원으로 집계됐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알리페이 결제서비스가 노동절 연휴 직원에 도입되다 보니 아직은 이용하는 고객들이 많이 않았다”며 “알리페이 앱을 통한 홍보, 매장고지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후 8시 30분 백화점이 영업을 종료하자 요우커들이 모두 명동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낮 동안 더운 날씨를 피해 시원한 매장에서 쇼핑을 즐긴 요우커들이 밤이 되자 죄다 명동거리로 나온 듯 보였다.

엄청난 인파와 거리 곳곳에 위치한 노점상이 한데 어울려 해가 진 명동 거리는 흡사 중국 ‘야(夜)시장’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해가 진 뒤에도 요우커들의 쇼핑은 계속됐다. 화장품 로드샵의 계산대 앞에는 여전히 줄이 늘어서 있었다. 몇몇 제품은 동이나 진열대가 텅텅 비어 있기도 했다.

중국 최초의 노동절은 메이데이 정신에서 시작됐지만 연휴로 정착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정부의 내수촉진정책 때문이었다. 일부 현지인들은 지금은 단지 휴일이라는 의미밖에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물건을 쓸어 담는 요우커들을 보면서 문득 기자는 궁금해졌다. 과연 노동절은 그저 ‘쇼핑하는 날’일 뿐인가?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가 5월 1일 내건 ‘加薪对劳动者最好的致敬(임금 인상은 노동자에 대한 최고의 경의)’라는 문구보다 그들에게 ‘1+1 행사’가 더 중요해 보인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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