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초처럼 떠도는 슬픈 `유랑가족`
부초처럼 떠도는 슬픈 `유랑가족`
  • 북데일리
  • 승인 2007.03.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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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요. 그래서 간이 탈나버린 거예요. 어머니요? 아버지 떔에 농약 마셔 버렸어요. 제초제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희망이 없었던 거예요. 삶에 대한 희망이요. 저요? 안 죽으려면 서울로 가야죠. 아저씨, 그거 알아요? 여긴요. 죽음의 땅이에요. 왜냐면, 나라에서 돌봐주지 않잖아요. 킬링필드라고 아시죠. 바로 그거라고요. 죽지 못해 사니까 죽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여긴 맨날 그런 사람들만 산다구요” (p.67)

[북데일리] 요즘 드라마를 가만히 보면 다들 즐거운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현실을 가능한 보기 좋게 다듬어서 보여주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트렌디드라마 주인공을 좋아하고, 즐겨 보는 건지도 모른다. 공선옥의 <유랑가족>(실천문학사. 2005)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참 읽기에 꽤나 버거운 책이다.

떠도는 사람들이 이야기, <유랑가족>

<유랑가족>은 5편의 연작 소설을 모은 소설집이다. 각 이야기들 마다 교묘하게 연결되는 부위가 있고, 겹치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아내가 집을 나간 시골 촌구석의 이야기가 한 편인가 하면, 아내가 서울 가리봉에서 하루씩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시골 촌구석에 취재를 나간 기자 이야기가 있고, 그가 취재차 들린 다른 마을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들을 연결해 보는 재미가 쏠쏠 하지만 읽기 힘들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유랑은 정착하지 못한 떠도는 상태를 말한다. 가족이라는 건 대부분의 경우 정착해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상징한다. 이 `유랑`과 `가족`이 뭉쳐서 바로 유랑가족이 됐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혹은 가족들은 대부분 흩어져 있어서 안정을 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존재들이다.

아내는 집과 남편이 싫어서 집을 나갔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찾아 떠나고, 남겨진 이들은 개발을 위해 집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히기 까지 한다. 거기에 어느 이야기 하나 속 시원하고 상큼하게 해피엔딩인 것도 없다.

세상은 아름다운가요?

책을 읽노라면 별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이런 가족들도 있구나,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라는 어리숙한 생각부터 시작해서, 기막히다는 생각도 들고, 작가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 너머에서 드는 가장 강렬한 생각은 도대체 이런 이야기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라는 것이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말대로 독자에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이 위해서 이런 글을 썼느냐 이 말이다. 답답하기만 한 이 글들을 앞에 두고 말이다. 어쩌면 사람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매일 이러 사람들을 보고, 이러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데, 굳이 이런 이야기들을 읽어야 하느냔 말이다.

트렌디드라마가 상큼하고 발랄하기만 하고 심각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매도를 당해야 하느냔 말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세상은 아직도 밝은 면이 있고, 굳이 세상을 회색빛깔로 뿌옇게 바라볼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 말을 하면서 우리는 이런 현실이 어딘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워펠리스를 바라보고, 잠실을 바라보고 강남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하지만 수몰 지구에 공사 현장에서 사람들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노모는 바라보지 않는다.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는 뉴스에서도 다루지 않는다.

운이 좋아야, 어느 다큐멘터리에 등장할 뿐이다. 우리는 어떤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당신은 정말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가족은 안정적으로 잘 정착해 있는가? 혹시 당신도 당신의 가족도 부유하고 있는건 아닌지는 작가는 묻는 건지도 모른다. 심각하게 우리가 살아가는 그런 현실이 아니어도 말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나고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가난`이라는 단어부터 제대로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건지 모른다.

[이경미 시민기자 likedre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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