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책>(인물과사상사. 2015)은 ‘기생충 박사’로 알려진 서민 교수의 독서노트이자 독후감이다. 그는 문학, 경제학, 인문학 등 다양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눈이 가는 대목이 있다.
“혹시 재미없으면 때려치우려고 천명관의 신작도 같이 챙겨 넣은 터였지만 그날 나는 천명관의 책은 꺼낼 생각도 못한 채 OO의 책장만 정신없이 넘겨댔다.” 172쪽
글 속의 OO은 박범신의 <소금>이다. 서민은 ‘옛날 작가’라는 선입견 때문에 박범신 작가에 대해 심드렁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소금>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잘 못 되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는 출장 다녀와 피곤한 상태에서도 책의 결말이 궁금해 “하나도 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책을 놓고 잠을 자라는 아내의 성화와 감시를 피해 이불 속에서 책을 다 읽었다고 토로했다.
“책장을 덮고도 감동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뒤로도 한 20~30분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뒤척여야 했는데, 그 바람에 다음 날 스케줄은 좀비 상태로 수행해야 했다.“ 173쪽
과연 <소금>이 서민을 마음을 먹먹하게 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이는 그가 인용한 다음 부분에서 엿볼수 있다.
“아버지는 빨대다. 자식들한테 다 빨리고, 더 이상 생산력이 없어지면 폐기처분된다.”
“아비가 빨아오는 단물이 넉넉하면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고 그 단물이 막히면 가차 없이 해체되고 마는 가정을 그는 너무도 많이 보았다. 아버지가 실직하면 가족이니 더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해체였다.”
서민은 <소금>을 읽은 걸 계기로 이 땅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하면서, 나이로 한 사람을 재단하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에 대해서도 반성했다고 전했다. <소금>은 자본의 거센 광풍 속에서 휘청거리는 우리 시대 아버지의 슬픈 자화상을 그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