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여론이 넘치는 세상을 향해...
건강한 여론이 넘치는 세상을 향해...
  • 장윤영
  • 승인 2015.04.16 11: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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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념 칼럼] 장윤영 대표이사 사장

지금은 TV에서 사라진 MC몽이란 가수는 대중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이름 석 자 정도는 기억할만한 꽤 유명한 연예인입니다. 그는 '고의발치'로 인한 병역기피 혐의로 한때 여론으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던 그는 이후 법정에서 무혐의 판정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 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대중 앞에 얼굴을 내비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송사들이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을까봐 감히 그의 복귀무대를 마련할 엄두를 못내기 때문입니다.

실제 그의 컴백 희망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인터넷과 SNS 세상은 저주와 욕설로 가득찬 댓글로 도배질됩니다. 그 어떤 비리와 스캔들보다 병역기피 문제에 민감한 우리 사회 특유의 정서가 투영된 그 살벌한 온라인 세상에서 "법적으로 무혐의 판정을 받지 않았느냐", "5년도 모자라다면 도대체 언제까지 못 나와야 한다는 것이냐"는 합리적 주장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지난해 연말과 올 초에 ‘얼굴없는 가수’가 되어 음원만 공개했는데 그때마다 음원차트를 휩쓸며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입니다. 인터넷 세상의 여론과는 달리 그의 노래를 듣고 싶어하고 좋아하는 팬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이와 비슷한 예. 2년 전 쯤 크레용팝이라는 걸그룹이 ‘빠빠빠’란 곡으로 데뷔를 할 때 였습니다. 이 그룹은 나오자마자 극우사이트로 불리는 일베의 회원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썼다는 이유로 네티즌들 사이에서 뭇매를 맞았습니다. 그룹해체, 활동불가가 여론이었지요. 적개심으로 가득찬 이들의 항의는 회원 탈퇴 협박이라는 행동으로 이어져 당시 이 걸그룹을 광고모델로 썼던 회사는 급기야 광고중단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들이 부른 노래는 삼촌팬까지 양산하는 팬들의 사랑속에 그해 연말에 최고의 히트곡으로 선정됩니다.

왁자지껄한 소수가 주도하는 여론과 또 다른 한 켠에 상존하는 침묵의 여론. 굳이 대중가수들의 예를 들어 이를 화두로 꺼낸 것은 네티즌의 여론이 전체 국민의 여론으로 포장되는 모순된 현실을 풍자함에 그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마녀사냥'적 행태와 그 행태에 반응하는 기성사회의 대응방식을 빗대어 볼 때 이러한 현상이 비단 대중문화계, 그리고 온라인 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우리 시대 전반을 관통하는 불온한 성질의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입니다.

실제 우리는 살아가면서 목청을 높이는 집단에 의해 주도되는 숱한 여론몰이에 마주하게 됩니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 진짜라는 말이 범람하듯 쏟아지고 갈라지는 여론이라는 이름의 모래폭풍 속에서 무엇이 진정한 여론이며, 또 어느 길이 지혜로운 여론결집의 방향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여기에 한 쪽의 여론몰이가 대세적 흐름으로 굳어져가는 순간 자신이 그들과 엇비슷한 생각을 가졌다면 몰라도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때는 차라리 그 이슈에 입을 닫고 있는 것이 현명한 처세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철지난 이념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경우 더욱 그러합니다. 사회적 이슈마다 이념의 잣대로 재단되어 한 쪽 편에 서기를 강요당하는 형국입니다.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좌와 우로 분류되고, 더 나아가 졸지에 소위 꼴통이 되고 좌빨이 되는 서슬퍼런 세상에서 당당하고 떳떳한 중도의 입지는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한 편으로부터 돌팔매를 맞기 두려워하는 이념적 콤플렉스의 시대에 횡행하는 현명한 처세는 비겁한 침묵이요, 상황에 맞추어 소신을 바꾸어 말하는 애처로운 카멜레온적 위장술입니다.

건강한 토론과 합리적인 타협의 중간지대는 그 토양위에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양 극단을 진원지로 한 갈등과 분열, 불신과 증오의 정서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이념이 압도하는 시대에 여론은 때로 괴물의 형상을 띠곤 합니다. 자신들의 생각만이 절대선이요, 다른 한편은 절대악이라는 해괴한 흑백논리 속에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진실이 되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은 거짓이 됩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합니다. 이념적 좌표에 맞춰 미리 결론을 내어버리고 거기에 부응하는 부분적 진실, 파편적 팩트들만을 꿰어 맞춰가며 여론몰이를 시도합니다.

조작과 선동, 독설과 야유, 감성과 야만의 마녀사냥적 행태가 그 여론몰이의 추진동력이 되곤 합니다. 자칫 그 오도된 여론몰이가 성공을 거두면 온 사회를 치명적으로 감염시키기도 합니다. 수 년전 광우병 촛불시위는 그 비극적 상징물로 훗날 역사의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을 지도 모릅니다.

꼭 1년 전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아픔을 함께 나누고, 더 이상 이런 비극적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으자던 초기의 하나된 여론이 지금은 어느새 둘로 갈라진 모양새입니다. 세월호 인양에는 여론이 얼기설기 모아졌다고는 하나, 그것이 원만한 사태수습의 결정적 단초가 될지, 또 다른 사회혼란의 서막이 될지 상황변화에 따라 여론은 다시 쪼개질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요구되는 시대정신은 포용과 합리일 것입니다. 서로 의견과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접점은 없는지, 누구의 의견이 더 옳은 것인지 합리적 검증과 토론 속에서 찾아내는 지혜와 용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극단의 이념과 정쟁이 배제된 그 현장에서 도출된 결론이 건강한 여론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건강한 여론이란 또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국민 개개인의 이익, 나라의 이익과도 합치되어야 합니다. 대중의 정서가 한 방향으로 뭉치고 쏠려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올바른 여론, 건강한 여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 여론에 무조건 순응하는 양태는 자칫 민주주의의 함정인 중우정치의 동의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이른바 ‘땅콩리턴’사건의 경우 일부 오너일가의 그릇된 행태에 일대 경종을 울리는 사회적 기능을 다하긴 했지만 그 분노와 야유의 함성으로 촉발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이면에는 우리 사회 특유의 반기업, 반재벌정서가 깃들여져 있음이 주지의 사실입니다.

단죄의 문제와는 별개로 그 사건이 모든 기업, 기업인을 싸잡아 매도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여기에 편승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눈치보기 행태가 답습되는 한 이 땅에 자본주의가 제대로 꽃피워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대기업 문제를 대중의 정서가 아닌, 합리의 잣대로 풀어가려는 사회적 지혜가 모아지는 곳이 바로 건강한 여론의 서식지일 것입니다.

이제 막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화이트페이퍼는 건강한 여론을 만들어내고 결집시키는 데 언론으로서의 소임을 다해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려 합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보수적 가치를 지켜나가되 합리적 진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공존과 상생의 지혜를 모색하겠습니다.

이념을 극복, 초월하는 국익 우선의 논리를 창출하고 세상사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합리성을 으뜸의 가치로 삼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무모하지만 긴 호흡으로 용기를 내어보고픈 도전. 제호를 화이트페이퍼로 정한 이유는 말 그대로 白紙 위에서 언론의 새로운 장을 펼쳐 보겠다는 강렬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화이트페이퍼 대표이사 사장 장윤영

-경향신문 전 논설위원, 헤럴드경제 전 편집국장·이사, 동아TV 대표·사장, 미디어펜 사장·주필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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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ldvhsl 2015-04-16 14:18:51
부화뇌동하지 않아 잘 드러나지 않는 합리적 중도의 뜻도 잘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