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옷을 입은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
화려한 옷을 입은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4.06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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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암실의 비밀은 무엇일까?

 [화이트페이퍼=북데일리] 아멜리 노통브의 <푸른 수염>(열린책들. 2014)속 마흔네 살의 에스파냐 귀족 돈 엘레미리오에게 없는 건 단 하나, 여자다. 다른 말로 사랑이라 해도 좋다. 그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파리 7구의 화려한 저택에 방을 세놓다. 여자들 가운데 방의 주인으로 낙점된 여자는 벨기에 출신의 미술학교 보조 교사 스물다섯 살의 사튀르닌.

 돈 엘레미리오의 주의 사항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의 출입을 금한다는 것뿐이다. 이미 방에 세 들었던 여덟 명의 여자가 실종된 사실을 알기에 사튀르닌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향해 능청스러운 돈 엘레미리오를 구애를 적당히 즐긴다. 그러다 그가 직접 만들어 선물한 치마 속 안감의 노란빛을 보고 그에게 빠져들고 만다.

 ‘색깔들을 섞으면 언제나 끔찍한 잡탕에 도달하고 말지. 한 빛깔의 순수함보다 더 완벽한 건 아무것도 없소. 난 당신을 위해, 당신 치마에 쓸 안감을 위해 87번째 노란색을 발명해 냈소. 점근선이란 수학적 과정을 통해 그것을 창조해 냈지. 색은 하나의 곡선이고, 점근선은 그것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직선이오. 그렇게 해서 난 나의 은밀한 색견본에서 그 점근선이 노란색을 만들어 냈소. 그런 노란색은 형이상학에 속하오. 그건 내가 염착시키는 데 성공한, 하나의 기적이오.’ (123쪽)

 이토록 근사하게 고백하는 남자가 있을까. 그가 지난 시절 여덟 명의 여자를 어떻게 했든 상관없다. 그냥 이 남자를 믿고 이곳에서 삶을 누리면 되는 게 아닐까. 그 마음을 알아 챈 돈 엘레미리오는 암실의 비밀을 알려준다. 그가 찍은 여덟 장의 사진에 담긴 비밀은 섬뜩했다. 돈 엘레미리오는 암실의 문을 잠그지 않은 채 사랑하는 사람을 시험한 것이다. 인간 본연의 호기심을 통해서 말이다.

 ‘7은 스펙트럼이에요. 그런데 당신은 여덟 명의 여자를 죽였어요. 나까지 포함하면 곧 아홉이 되겠죠. 우리의 현실에 있어서 스펙트럼의 양 끝에 검은색과 흰색이 ― 당신의 지고한 쾌락, 즉 색깔들을 구성하는 것의 절대적인 부재 혹은 현존 ― 있다는 것을 전 잊고 있었어요.’ (168쪽)

 이제 사튀르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무서운 공간에서 당장 뛰쳐나와야 맞다.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미치광이에게서 도망쳐야 했다. 그러나 그녀 역시 그가 집착한 색과 죽음의 황홀경에 물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돈 엘레미리오가 죽는 순간 사튀르닌이 금으로 변한 것이다. 맹목적이며 광기 어린 삶의 결말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까.

 잔혹하고 잔악한 이야기를 아멜리에 노통브 특유의 재치로 비틀린 문장으로 만나는 건 유쾌한 일이다. 샤를 페로의 동화는 색이라는 화려한 옷을 입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이 지정한 절대적 고유의 색을 부여하는 돈 엘레미리오 상대로 미술교사라는 사튀르닌의 직업은 정말 완벽하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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