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로 가득한 미래를 생생하게
공포로 가득한 미래를 생생하게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5.03.30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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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석의 <강철 무지개>

 [화이트페이퍼 = 북데일리] 어제 구매한 신상품은 내일이 되면 과거의 유물처럼 변해버린다.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에 열광한다. 그 덕분에 우리 삶은 편리해졌다. 과거의 상상이 현실로 이뤄지는 세상을 산다는 건 분명 환상적이다. 그러나 그런 거대 자본의 그림자가 얼마나 짙게 퍼지는지 잊고 산다. 거대 자본이 시장을 장악하면 우리 삶은 어떻게 변화할까. 최인석의 <강철 무지개>(한겨레출판. 2014)는 그런 미래를 생생하게 그린 소설이다.

 SS 울트라마켓의 계산원 지니는 반복된 일상을 살아간다. 물건을 사는 손님에게 결제 방식을 묻는 게 그녀가 하는 말의 전부일 때도 있다. 일탈이라면 클럽에 가는 것뿐이다. 그곳에서 서울클라우드익스프레스 배달기사인 제임스를 만난다. ​미래의 모습이라기보다 현재 노동자였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미래를 꿈꾸지만 현실은 힘겨웠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자본의 공간을 버리고 그들만의 세상을 찾아 떠난다.

 ‘그들에게 허용된 삶의 방식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그들 자신도, 삶도 부정해야만 비로소 가능해지는, 삶이 없는 삶, 이를테면 캄캄한 삶, 삶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삶을 버려야만 그들 스스로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비로소 아슬아슬한 생존이라는 밧줄에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그들 자신을 긍정하려 들면 세계가 그들을 부정했다. 그들 자신이 존재할 틈이 없었다. 세계에는 그들의 삶이 포함될 겨를이 없었다.’ (135쪽)

 그들이 선택한 곳은 2075년 핵폐기물로 인해 오염된 땅으로 아무도 살지 않는 낙후된 서해의 작은 마을이었다. 기계의 부속물처럼 살았던 숨 막히던 서울과는 달리 그곳에서의 삶은 천국과 같았다. 그러나 중일 전쟁을 이유로 군인들은 그들을 쫓아냈다. 그곳을 떠나면서 지니와 제임스는 헤어진다. 서울로 돌아온 지니는 아무 걱정 없는 삶을 제공하는 SS 울트라 돔에 들어간다. 불안전한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SS 울트라 돔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그들의 방식에 순응하며 살아가면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SS 울트라 돔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비밀리에 움직인다. 잡을 수 없는 무지개를 꿈꾸며 오늘을 견디는 대신 스스로가 무지개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에너지돔 주민들이 거의 모두 그랬다. 전선(電線)도 없이 집으로 파고드는 에너지처럼,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세금 혜택처럼, 집처럼, 직장처럼, 감시는 당연하고 당당했다. 폐쇄 회로 카메라는 거리마다, 모퉁이마다, 복도마다, 승강기마다, 벽에, 계단에, 천장에, 문틀에 박혀 있었다.’ (272쪽)

 소설은 평범한 소시민을 대표하는 지니와 제임스와 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서울클라우드익스프레스 회장 한창수 주변의 이야기를 함께 들려준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미래에도 존재했다. 한창수는 간 이식을 위해 멕시코로 향했다.​ 자신의 목숨만 중요했던 한창수의 일행은 제공자인 소년에 대해 함구한다. 간호사 아이리스만이 소년을 찾아 나섰다가 실종된다. 서울에 돌아온 한창수는 아이리스의 남자친구 멜라니에게 습격을 당한다. ​아이리스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절망과 분노는 에너지돔 하나를 파괴하는 것 따위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온 세상의 에너지돔을 모조리 파괴하는 것으로도 오히려 부족할 것이다. 세계 전체를 밑바닥으로부터 제거해버릴 수 있다면, 사람이 아닌 모든 것을, 삶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그녀와 재선 사이를 가로막은 모든 것을 파괴해야만 비로소 조금쯤은 말문이 열려 하고 싶었던 말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삶은 그때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372쪽)

 기업과 정부가 에너지 돔이라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무서운 미래가 있었다. 자본과 ​권력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은 파괴될 수 없는 것일까. 2105년의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상상 속 이야기라고 말할 수 없다. 지니와 제임스는 일용직으로 하루를 견디며 계약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을 자화상이 될까 두렵고 서글프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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