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딸, 아내...박완서 작가의 또 다른 얼굴
엄마, 딸, 아내...박완서 작가의 또 다른 얼굴
  • 이수진 시민기자
  • 승인 2015.02.08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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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딸의 추억

[북데일리] 떠난 사람의 빈자리는 늘 허전하고 그립다. 때로는 절절한 아픔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떠났지만 곁에 있는 것처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떠난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 해주는 것이다. 4년 전 우리 곁을 떠났지만 아직도,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박완서 작가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달. 2014)는 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 작가가 엄마를 그리워하며 쓴 산문집이다. 저자는 엄마가 십 년이 넘도록 집필실로 사용했던 글노동의 거처이자 손수 마당을 가꾸며 육체노동을 병행했던 ‘노란 아치울’집에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산문집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가 있다.

책 표지의 붉은 맨드라미 손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소박하면서도 열정적이고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 그림은 호원숙 작가가 어머니의 마당에서 식물들을 가꾸며 직접 그린 것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그리지 않았을까. 그림은 정교하거나 미려하지는 않지만 특유의 선명한 색감과 투박한 듯하면서도 조화로운 색연필의 질감에서 묘한 정서가 느껴진다.

호원숙 작가가 엄마가 머물던 ‘노란 아치울’집에서 살고 있는 사연이 있다.

엄마는 딸에게 돌아가시기전 문학관을 만들지 말고 맏딸이 아치울 노란집에서 살기를 원하셨다. 고인의 유지에 따라 호원숙은 엄마의 보금자리에서 엄마를 추억하고 되새기며 진정한 엄마의 마음을 담아 글을 썼다. 엄마의 손, 엄마의 발, 엄마의 말, 엄마의 뜰, 엄마의 물건 등등 엄마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호원숙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또 많은 것을 함게 해낸 사람이다. 그야 말로 살아있는 문학관이며 산증인인 셈이다.

호원숙 작가는 딸로서, 작가로서 엄마를 추억하며 엄마의 ‘유연함’과 ‘집중력’을 따르고 싶다고 말한다.

박완서 작가는 1990년대 초반 ‘르모’라는 최초의 문자작성용 컴퓨터로 글을 썼다. 그리고 디스켓에 문서를 저장했다. 컴퓨터의 발전에 따라 바꾸어 사용하다가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노트북을 사용하였다. 새로운 기기에 낯설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시대의 흐름을 따르면서 시대의 흐름에 발 맞추는 유연함이 있었던 것이다.

호원숙 작가는 어머니의 집중력은 감히 다가가기 어려운 경이로울 경지였다고 말한다.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신문에 연재할 때는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과 끈질김이었다고 회고한다.

“나는 글쓰는 엄마를 외면했다. 도와줄 수도 없고 간섭할 수도 없는 엄마만의 일이었으므로. 그러나 엄마에게 가족의 일은 그렇지 않았다. 노망이 든 할머니와 늘 해왔던 아버지 수발과 해마다 돌아오는 아이들의 입시로부터 어머니는 놓여날 수 없었다. 그 가족사를 회피하지 않으면서 결국에는 다 문학으로 풀어내셨다. 그 어떤 것도 외면하지 않고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다.”_119쪽

글쓰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박완서 작가의 집중력을 부러워할 것이다.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 역할을 다하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는 부분이 마음에 울림을 준다.

호원숙작가는 가족에게 정말로 슬픈 일이 생기고 난 이후 엄마의 글들이 슬프도록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글쓰는 엄마를 둔 딸만이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아닐까.

“나는 엄마의 글을 다시 읽으면 꼭 눈물을 흘리고야 마는데 그걸 쓸 때의 엄마의 표정, 걸음걸이, 조바심과 서성임, 쾌활했던 몸 움직임, 봉투를 뜯을 때의 신경질적인 손놀림, 비스듬히 누워 보시던 책들의 아름다운 표지와 제목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안타까운 눈빛까지도 그리워지기 때문이다.”-119쪽

박완서 작가는 지금은 우리 곁에 없지만 수십 권의 책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이 산문집은 박완서 작가의 책과는 다른 느낌의 작가 박완서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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