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없는 여행서 '과감한 시도'
사진 없는 여행서 '과감한 시도'
  • 신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15.01.1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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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그림과 글 <내 손으로, 발리>

[북데일리]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는 여행지에서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셀카봉을 챙겨야 하고 맛집 앞에서 인증샷을 찍어야 하고 인스타그램에 올려 자랑질을 해야 여행이 실감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여행은 남들 다 가는 곳에서 똑같은 뷰를 보고 똑같은 포토존에서 사진찍는 것이 정례화된 듯 하다.

학교에서 정답만을 배워온 우리는 정답 외의 길을 잘 모른다. 조금만 옆으로 빠질라치면 불안하다. 한 번 실패하면 인생이 끝날 것 같다. 여행에서 만큼은 모험을 해볼 법도 하건만 그리고 그 모험은 실패에서 나오는데 우린 겁부터 먹는다. 인터넷을 뒤져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꼼꼼히 하고 떠나야 안심이 된다.

이런 기존의 여행에 식상하다면 <내 손으로, 발리>(NEWRUN. 2014) 여행기를 추천한다. 제목을 보고 흔한 국민관광지 발리에서 뭘 건질게 있겠냐고 치부해 버리면 안 된다. 글쓴이는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의 특성을 살려 사진이 아닌 손그림으로 발리를 그리고 글씨도 직접 손으로 써서 만들었다. “사진의 시각으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지 않는단다.

단 몇 초만에 풍경을 담아내는 카메라와는 달리 그림은 최소 몇 분은 깊이 관찰해야 그릴 수 있다. 그 몇 분의 바라봄에 의해 여행은 달라진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더 자세히 본다는 것이고 그만큼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리라. 또한 주관적인 시각으로 봄으로서 나만의 여행이 완성되는 것이리라. 이 책에서는 쉽게 지나쳤을 사물 하나하나 그림으로 보여준다. 사진으로 찍었다면 자세히 볼 수 없는 현지인의 전통 복장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한국 가이드북에 없는 카페에서 음식을 먹고 종이가 없어 나뭇잎에 느낌도 그려본다. 그 속에서 작은 성찰도 얻는다.

"미술작품은 보고 또 보면 질리고 머리가 아프지만 자연은 아무리 바라봐도 그렇질 않다. 하늘이라는 커다란 캔버스에  가운데 우뚝, 큰 야자수가 꿈틀대며 올라가고 여기엔 활짝 펼쳐진 잎들이 마치 우산 같은 나무가 우뚝, 땅엔 잎이 큰 파초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저 멀리 살짝 보이는 진분홍색 꽃들… 이럴때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언제나 자연에 패배감을 느끼곤 한다. 나는 떨어지는 저 잎을 그릴 순 있어도 만들수는 없다. 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나무 한그루, 나뭇잎 하나, 돌 하나까지도 같은 것이 하나 없게 만들었다. 어떤 뛰어난 예술가도 나뭇잎 한 장의 아름다음에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 140쪽

보너스로 몰스킨 같은 노트를 하나 주는데에 이 책의 미덕이 있다. 노트와 연필을 챙겨서 여행을 떠나라고 등떠미는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불쑥 따라해 보고 싶어진다. 그림을 못그려도 상관없다. 내 마음대로 느낀대로 그리고 쓰다보면 나만의 여행기가 책으로 완성될 것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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