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보석 같은 도시 '진주'의 멋
숨겨진 보석 같은 도시 '진주'의 멋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4.12.03 2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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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방문화의 멋과 풍류가 흐르는 곳

[북데일리] “촉석루(矗石樓)는 선비들이 풍악을 즐기던 곳입니다. 아무리 선비여도 책만 읽으면 스트레스가 쌓일 수 있죠. 때로는 선비들이 누각에 올라가서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퉁기면서 기녀들과 술도 한잔하고, 시도 한 수 짓는 곳이 촉석루였습니다. 100년 전에 이 촉석루 누각에 오셨더라면 예쁜 기녀들과 술도 한잔하면서 좋은 시간 보내셨을 텐데 안타깝네요.” -해설사

▲ 촉석루

‘천년의 역사가 흐르는’ 진주는 아름다운 강의 도시다. 아침부터 늦가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지난 금요일(28일)과 토요일(29일), 진주시는 일간지 기자들을 초청, 팸투어를 제공했다.

첫 번째 방문지는 촉석루와 논개로 유명한 진주성(晋州城). 남강 변 절벽 위에 세워진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지 중 한곳이다. 진주성의 실질적인 정문인 ‘공북문’을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동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김시민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불과 3,800명의 병력으로 6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왜군을 격퇴하고 진주대첩을 이룬 인물이다.

▲ 공북문

진주성 내에는 촉석루, 의기사(義妓祠), 의암(義巖), 국립진주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유적이 있다. 그 중 촉석루는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2012년 미국 CNN에서 선정한 ‘한국관광지 BEST 50’에 선정되기도 했다. 촉석루라는 이름은 ‘강 가운데 돌이 우뚝 솟은 까닭’에 그리 지어졌다. 전시에는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시에는 시인들이 풍류를 즐기던 명소이자 과거를 치르는 고사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동행한 해설사의 설명이다.

“장원급제하신 분이 촉석루를 지었다 해서 ‘장원루’라고 하기도 하고, 지방의 향시를 촉석루 누각에서 치뤘다 해서 장원루라 불리기도 합니다. 또한 ‘남장대’라고도 하는데, 남쪽에 있는 장대를 의미하는 말로, 전쟁이 일어나면 장수가 이곳에 올라가서 군사를 지휘를 했습니다. 1948년까지는 국보로 지정되었었지만, 현재는 1960년대에 새로 복원된 상태의 모습으로 문화재자료 제8호로 남아있습니다.”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촉석루는 동서로 큰 대들보 네 개가 떠받치고 있다. 해설사에 따르면, 1960년 복원 당시 목재를 구하기가 힘들어 수입목재를 사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절대 수입 목재를 쓰면 안된다”고 해서 설악산의 270년 된 전나무 하나를 가져다 대들보를 만들었다. 그 목재를 간택하고 벌채해서 기차 10량에 실어 진주로 가져오기까지 총 1년이 걸렸다. 그만큼 크고 튼튼한 나무를 사용했다는 의미다.

촉석루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 ‘의기사’가 있다. 논개는 임진왜란 당시 2차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자 열여덟 살의 나이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 나라로부터 녹을 받거나 대접을 받지도 못하는 기생이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의 몸을 던져 순절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촉석루 밖으로 나가면 그녀가 뛰어내린 바위 ‘의암義巖’을 볼 수 있다. 위험한 바위라 하여 위암(危巖)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바위에는 그녀의 절개를 기리는 義巖이라는 한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 의기사 내의 논개 영정

진주성을 나와 레일 바이크 타기를 체험한 후 진양호로 향했다. 진양호는 지리산에서 발원한 덕천강과 덕유산에서 발원한 경호강이 만나 형성된 인공 호수다. 진양호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저녁 노을은 진주 8경 중 하나다. 방문 당일 흐린 날씨로 인해 저녁 노을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숙소 창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물안개의 향연은 탄성을 자아냈다. 그 외 진주8경으로는, 제1경 촉석루, 제2경 남강 의암, 제3경 뒤벼리, 제4경 새벼리, 제5경 망진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시가지, 제6경 비봉산의 봄, 제7경 월아산 해돋이가 있다.

▲ 물안개 낀 진양호

이와 함께 34만 명 인구의 진주에는 국립대학 3개를 포함해 총 6개의 대학이 있을 정도로 교육 도시다. 또한 문화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대중가요 1세대 작곡가중 유명한 사람으로 손목인이 진주 출신이다. 그는 ‘아빠의 청춘’, ‘카스바의 여인’ 등 1000여곡의 노래를 작곡했다. 작곡가 이봉조의 스승으로도 알려진 이재호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국 대중가요계의 슈베르트’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약 2000여곡을 작곡했다. 진주 출신의 가수로는 남인수가 유명하다. ‘애수의 소야곡’, ‘무너진 사랑탑’ 등을 불렀다. 이처럼 진주는 수많은 예능인을 배출했는데 예로부터 풍류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 가수 남인수 동상

진주에는 크게 높은 산이 없고 전체 면적의 70%가 구릉과 들판으로 형성되어 있다. 해서 농산물과 해산물 등 물산이 풍부하다. 예전부터 전라도 구례, 남원과 함께 경상도 진주, 성주가 나라에서 가장 기름진 땅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진주서 나라에 바치는 공물이 전국의 절반에 달한다”고 쓰여 있다. 먹을 게 많다보니 사람들과 풍류객들이 많이 모이고 기생도 많았다. 고려사에서 부터 진주 기생이 등장한다. 진주여고를 졸업한 작가 박경리는 <토지>에서 “진주 기생 숫자가 여름날 파리보다 많다”고 했을 정도다.

진주의 대표 음식으로는 냉면과 비빔밥이 있다. 해물육수로 유명한 진주 냉면은 바로 풍류객들이 밤에 야참으로 먹었던 음식이다. 풍류와 함께 기생뿐 아니라 냉면도 발달하게 된 것. 자연히 기생이 많다보니 미인도 많았고, 우리나라 전국 8도의 미인 중에서 진주의 ‘산홍’이라는 기생이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특히 진주는 우리나라 전통을 계승한 목공예의 진수를 보여주는 ‘소목장’이 있다. 장인 정진호는 경남무형문화재29호다. 그는 나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결과 색상, 무늬를 그대로 살려 다양한 공예품을 만든다. 피나무, 오동나무, 먹감나무 등으로 만든 머릿장, 반닫이, 탁자 등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앞으로 진주시에서는 전통 목공예 육성을 위해 전문 단지를 개발, 설립할 계획이다. 우리만의 아름다움과 장인의 정성이 오롯이 담긴 작품들이 계승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편 진주는 우리나라 전통 소싸움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소싸움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진주의 대표 전통 민속놀이다. 3월부터 11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에 진주전통소싸움경기장에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기자단이 방문한 29일에는 올해의 마지막 소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싸움에 대한 규칙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지루할 틈이 없고, 해설사의 구수한 입담을 듣다보면 웃음이 절로 터진다.

이외 진주는 남강유등축제도 유명하다. 남강에 유등을 띄우는 풍습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군사 신호와 전술, 통신수단으로 이용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전투에서 순절한 7만명의 민.관.군의 넋을 달래기 위한 진혼행사로 유등 띄우기가 행해졌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다양한 문화행사와 체험을 할 수 있는 진주시는 한번 방문으로 끝내기에는 못내 아쉬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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