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과거가 현재를 물어뜯는다면
오래된 과거가 현재를 물어뜯는다면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11.24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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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의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북데일리] 현재는 과거를 부정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그렇다. 그러므로 부정할 수 없는 과거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삶은 달라진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밝은세상. 2014) 속 주인공에게 일어난 일도 그렇다.

 주인공 한나는 반전 운동에 앞장서는 교수 아버지와 유능한 화가 엄마를 두었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다. 의대생 댄과 사귀면서 한나는 결혼을 결심한다. 졸업도 하기 전 결혼을 하고 곧바로 아들 제프리가 태어났다. 한나는 평범한 주부의 삶을 시작한다. 1970년대 여대생의 삶을 떠올리면 한나의 선택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한나가 정말로 원하는 삶이 주부였을까 궁금할 뿐이다.

 댄의 공중보건의 근무를 따라 시골마을 펠험으로 이주한다. 그곳은 사생활이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모두가 한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쁜 댄과는 점점 대화가 줄어들고 제프리를 돌보는 일로 지쳐간다. 위독한 시아버지를 보러 댄이 고향을 떠난 사이 한나의 내부에 불을 지피는 일이 발생한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여행 중인 급진주의자 저슨에게 숙소를 제공한 것이다. 낯선 사람의 등장으로 마을은 술렁인다. 한나는 한순간의 감정으로 저슨과 사랑을 나눈다. 문제는 저슨이 여행자가 아니라 FBI의 추격을 당하는 도망자라는 사실이다. 그의 협박으로 캐나다까지 그를 피신시키고 돌아온다.

 비밀을 간직한 한나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30년이 지난 2003년 현재 댄은 정형외과 의사로 입지를 굳혔고 교사로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변호사인 아들과 펀드매니저인 딸 누가 봐도 완벽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했다. 유부남과 헤어진 딸이 실종되면서 언론에 노출되고 30년 전의 일탈은 저슨의 책으로 출판된다. 언론과 사람들은 한나를 공격하고 댄은 이혼을 선언한다. 한나는 과거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잘못된 부분을 말하고자 노력한다. 외면하는 아들과 남편 대신 마지의 도움으로 싸운다. 변호사를 고용하고 토크쇼에 출연해 자신의 입장을 세상에 밝힌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간혹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한다. 한편으로는 우리 자신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 우리는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자기 자신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568쪽)

 한나는 리지의 실종과 저슨의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길 원했던 엄마와의 마찰, 댄과 연애시절 프랑스 유학을 선택하지 않았던 일, 제프리와 리지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던 시절, 30년 결혼생활이 진정 행복했는지 말이다. 한나에게 일어난 사건을 보면서 생각한다. 누가 한나의 삶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가? 그녀를 질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녀 자신이 아닐까.

​ ‘인생이란 일상의 사이사이로 섬광처럼 반짝이다가 지나가는 순간에 불과했다.’ (356쪽)

 부정할 수 없는 과거에 대해 피하지 않고 맞선 한나의 당당한 모습은 매우 멋지다. ​소설을 읽는 동안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이가 많을 듯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영원하지 않은 생을 살면서 자기 자신의 삶을 안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삶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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