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장] 밤과 슬픔이 자라나는 동굴
[명문장] 밤과 슬픔이 자라나는 동굴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11.17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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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의 『소란』중에서

[북데일리] 시인의 산문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박연준 시인의 첫 산문집 <소란>(2014. 북노마드)도 다르지 않다. 문장에서 시의 파편을 보는 듯하다. 다음은 누눈가 한 번쯤 경험했을 기다림에 대한 글이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독특하게 다가온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고 할까?

 ‘찾는 사람은 빙글빙글 도는 사람이다. 장소와 시간을 더듬고 훑고 재빨리 스쳐지나가며 빠른 시간 내에 풍경을 도태시킨다.

 찾는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과 이란성 쌍둥이다. 그들은 선반 위에 놓여 있는 유리컵과 조약돌이다. 한쪽은 깨지기 쉽고, 다른 쪽은 깨지기 힘들다.

 찾는 사람에게 시간은 축지법으로 뛰어다니는 투명인간이다. 뛰어다닌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볼 수는 없다. 흐르는 시간이란 자연스러운 시간인데 반해 찾는 사람에게 시간은 절뚝이는 시간, 무릎이 까이고 발목이 벗겨지는 시간이다. 찾는 사람의 입속은 습기가 없는 땅, 갈라진 무덤이다. 밤과 슬픔이 급속도로 자라나는 메마른 동굴이다.

 찾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찾는 사람은 찾아다녔던 사람, 혹은 무력한 사람으로 변한다. 짧아지는 미래를 덮고 허리케인처럼 모든 것을 한꺼번에 날려버리기도 한다. 한편 끝내 찾는 것에 실패한 사람은 시무룩한 돋보기처럼 불록한 슬픔을 간직하게 된다. 볼 안쪽에 혹을 숨긴 채 평생 살아간다.’ (206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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