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를 탐색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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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11.14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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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샌섬의 『페이퍼 엘레지』

 

 [북데일리] 종이책을 읽는다. 전자책의 편리함을 알지만 여전히 많은 독자는 종이가 주는 질감과 아늑함을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은 모두 종이다. 문자나 이메일이 아닌 누군가의 손편지, 좋아하는 연극 티켓과 팜플렛, 연인과 함께 떠났던 여행을 기억하는 기차표. 어쩌면 우리가 종이를 외면하지 못하는 건 그 안에 담긴 추억 때문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언 샌섬의 <페이퍼 엘레지>(반비. 2014)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종이는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존재할 수 있게, 혹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시간과 거리를 무너뜨리고 가로지른다. (중략) 펜을 종이에 가져다 대는 신비한 행위를 통해, 그리고 여러분의 인내심 있는 독서를 통해,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환상이 생겨났다. 종이 위에 음성이 있고, 나는 종이 위의 음성 속으로 사라진다. 종이가 나를 만들어내고, 드러내고, 또 지운다. 온전한 드러남. 완벽한 위장.’ (23~24쪽)

 책은 무척 흥미롭다. 종이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뿐 아니라, 종이와 관련된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종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단순한 책이 아니라 일상에서 종이를 빼면 설명할 수 없는 게 많다. 그만큼 종이는 우리와 밀접한 관계라는 것이다. 하루를 시작해 화장실에서 쓰는 종이부터 마트에서 구매하는 물건들을 감싸는 종이, 더 많은 소유를 원하는 돈, 그 돈을 증명하는 증권, 통장, 영수증 모두가 종이다.

 ‘책 수집만큼 허세라는 병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있을까. 책이야말로 종이 역병이 창궐하는 곳이다. 종이가 힘과 지위를 가장 뚜렷하게 공격적으로 내세우는 곳이다. 우리도 고대인과 다를 바 없이 사물에 부적처럼 영험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책은 우리가 집에서 섬기는 신이다. 문학사가 제임스 캐리는 비평의 결을 거스르는 말을 했다. “책은 중세 문화사에서 정점을 이룬 사건이었다.” 책은 “중세 문화가 단절되는 게 아니라 지속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도 중세에 살고 있는 셈이다.’ (93쪽)

 저자는 종이를 모든 시선에서 바라본다. 책, 돈, 광고, 건축, 예술, 영화, 정치, 심지어 장난감까지 다룬다. 찰스 디킨스와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부분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모든 상품과 예술품들의 시작은 종이였다. 메모로 시작된 소설과 그림으로 태어났고, 그것들은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종이가 담당한다. 이제는 사라진 영화 포스터나 정부의 정책 메시지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종이와 정치를 이야기할 때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소설 <주기율표>에 대한 언급은 숙연함과 동시에 종이의 존재에 대한 감사를 갖게 한다.

 그러니 이 책은 이언 샌섬 개인의 종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아니라 점점 종이를 가치를 잊은 채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한 경고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엘레지란 표현은 반어적이라 할 수 있다. 언제나 사라질 종이에 대한 경의가 아닌 영원히 존재할 종이에 대한 경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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