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밀고 가게 하는 시인의 언어
삶을 밀고 가게 하는 시인의 언어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10.11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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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림 시인의<버들치>

 "말이 곧 시가 되고, 노래가 되는 말이 곧 법이 되고, 밥이 되는 때로 돌아가기. 아니 말이 곧 목화가 되고, 햇콩이 되는 때로 돌아오기까지 물렁물렁한 말의 혓바닷으로 깨어진 말의 사금파리에 베인 상처 훑어주기."-시인의 말
 
[북데일리] 등단 후 20여 년 동안 삶과 말에 천착해온 시인이 시집 <버들치> (문학동네.2014)에 말이 시가 되는 절정을 보여준다. 시인의 삶 속에 들어온 고향 사람들, 살아오면서 만나온 사람들의 삶을 말하며 그 안에 지탱하는 말의 힘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고흐가 그려준 우체부 룰랭의 얼굴은 진흙빛이다/ 올리브 색깔의 구겨진 제복을 입은 룰랭은/ 아를르의 포도밭 둑길을 늙고 지친 노새처럼 돌아단니다/(중략)//룰랭과 김판술씨의 좁은 어깨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멍에 같기도 하고 핸들 같기도 하다/ 경사진 시골길에서 곧 쓰러질 듯 비뚤비뚤거리지만 좌우로 흔들리면서 중심을 잡아 나아갈 줄 안다. 비바람 맞으며 무르익은 나이가 중심이다."(우체부 김판술) 부분
 
 시인은 특이하게도 명화속에 시를 끌어들인다. 고호 고갱, 마티스 렘브란트의 그림들이다. <감자먹는 사람들>,<밀짚모자를 쓴 남자>,<사이프러스>,<렘브란트의 어둠>등 그림의 명암을 통해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등장시킨다. 그에게 예술은 곧 삶이다. '삶이 궁핍할수록 생존의 몸짓'은 더 치열하다.

 "대낮에 켜진 가로등처럼/ 벚꽃이 너무 눈부셔 쓸쓸한 봄날/ 모래먼지 풀풀 날리는 그녀의 봄날이 삽날에 잘린 지렁이처럼 그렇게 말라비틀어지며 기어서 간다/ 길이 보이지 않는 가슴 속에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서둘러서 간다/ 천지사방을 할퀴며 간다/ 그녀의 봄은 칼날을 품고 있다 때론/ 아플 정도로 황량해서 아름다운 生도 있다"(봄날2)전문

 꽃이 지천인 봄날 ​시인의 눈에 비친 그녀의 삶은 누추하다. 가난과 죽음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사람들의 삶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시인의 시선에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이혜원은 그의 "서정시야말로 삶의 상처와 비애에 공감하면서도 치유와 각성의 언어를 실현할 수 있는 저력을 지녔다고 말했다.

또한 시인은 자신을 "말에 붙잡혀 사는 자"라고 한다. 다음 시를 보자. 

 "어떤 말은 생쌀같이 씹히고 어떤 말은 밥그릇 속에 든 머리카락 같다/ 어떤 말은 입가에 묻은 밥알 같고 어떤 말은 눈에 들어간 모래알 같다/ 애써 생쌀을 씹게 하고, 머리카락을 밥그릇에 집어 넣게 하고/ 모래알이 눈 속에 들어가게 도드라지는 말들이 있다/종종 핏발 서본 사람은 일부러 모래알을 집어 넣지 않는/ 생살을 씹어본 사람은 내켜 생쌀을 먹지 않는다/(중략)//밥알을 밥그릇에 들어가게 하는 말들을 뒤엎고자 마구잡이 칼을 휘두르는 컴컴한 말들/ 패배한 말들을 뒤엎고자 마구잡이 칼을 휘두르는 컴컴한 말들/ 패배란 말의 머리통을 밟고 선 점령군 같은 말/ 빼앗은 밥그릇을 치켜들고 히히덕거리고 있다/ 깊고 어두운 거리에서 솟아난 말들이 거리거리에서 쫘악 깔렸다/ 비릿한 냄새가 흥건하다."(비릿한)부분

 소설의 힘이 이야기라면 시는 언어를 끌고 가는 힘이 아닐까. 시집에는 말에 관한 실감나는 비유의 시들을 볼 수 있다. 사물에 이름을 지어주고 늘 말과 씨름하는 시인의 언어는 삶을 밀고 가게 한다.

 속이 텅빈 말의 배를 눌러/ 시를 게워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물의 껍질에서 끝없이 미끄러지고 마는 말로/ 시를 주물럭거리고 싶지는 않다/ 염통이 팔딱팔딱거리는 말로/ 구멍투성이 말랑말랑한 말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말로/ 참꽃 같은 시를 낳고 싶다/ 참말로 먹을 수 있는 시를."(참꽃 같은> 전문​

 몸 안에 있던 말들이 몸 밖으로 나와 거칠고 폭력적으로 변해 생채기를 내는 말들을 시인은 세상언어로 가공하여 삶을 살게 한다. 그가 말에 붙잡혀 사는 이유이며 '참꽃 같은 좋은 시를 짓기 위함이다. 
 
 '씨 뿌리는 사람의 심정으로 시를 써 보라'라는 아내의 말처럼 시인은 이미 '마음 속 주렁주렁 달린 빈 주머니'에 말랑말랑한 시를 채워넣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집은 시인에게 말이 어떤 존재이며 말의 힘, 말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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