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만든, 아름다운 꽃
상처가 만든, 아름다운 꽃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10.10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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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삶 보듬은 김이설의 <선화>

 ‘누구든 상처가 있다. 상처에서 흐르던 피가 굳고 딱지가 내려앉고, 딱지가 떨어진 자리에 솟은 새살이 바로 상처를 반추하게 하는 흉터였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흉터를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어쩌다 그랬을까 상상하기도 하고, 아물기까지 얼마나 걸릴 지 혼자 추측해보기도 했다. 때로 커다란 흉터나, 흉하게 일그러진 흉터를 보면 나도 모르게 안도가 되기도 했다. 세상에 나만 흉터가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18쪽)

 [북데일리] 발표하는 작품마다 불편하고 어두운 사회문제를 파고드는 작가 김이설이 <환영>이후 3년 만에 <선화>(2014. 은행나무>로 돌아왔다. 흑백으로 묘사된 얼굴과 목부터 올라오는 흉터를 지닌 여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선화는 오른쪽 얼굴을 덮은 짙은 흉터로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서른다섯 살의 여자다. 꽃집을 운영하면서 꽃을 잡고, 꽃을 만지고, 꽃과 함께 살아간다. 선화의 상처를 알지 모르는 누군가는 꽃과 보내는 일상을 아름다움의 결정체라 여기며 부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선화는 단 한 번도 꽃처럼 환한 미소를 보인 적이 없다.

 존재만으로도 가족에게 짐이었던 선화였다. 할머니는 선화뿐 아니라 엄마에게도 험한 말을 내뱉었다. 언니 연화는 흉터 때문에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선화를 증오했다. 결국 선화가 연화의 얼굴에 엄마의 화침을 던지면서 엄마의 사랑은 거둬진다. 더이상 엄마의 꽃집은 선화에게 안식처가 아니었다.

 자신의 흉터에는 눈길조차 닿지 않았지만 언니의 상처를 매만지는 가족들, 선화는 세상의 모든 불운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처럼 두려웠을 것이다. 거기다 두 딸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서른다섯 살의 엄마를 이해할 수도 없다. 그래도 선화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휴학을 반복하며 대학을 졸업했고 이력서를 냈지만 선화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세상은 나 같은 존재 자체를 아예 인식하지 못했다.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 쳐다볼 이유조차 없는 존재, 신경쓸 겨를도 없는데다, 필요도 없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한낱 먼지와 같은 것이었다.’(95~96쪽)

 아무도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을 향한 절망과 분노는 선화의 감정을 앗아갔다. 사랑, 연애, 결혼은 선화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이 아닌 꽃을 향해 열렸다. 옛 연인에게 꽃을 보내는 영흠, 농장에서 나무를 키우는 병준을 통해 선화는 다시 세상을 보려 한다. 어쩌면 선화에게 꽃은 선화가 되고 싶었던 유일한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특정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꽃은 특별한 의미니까.

 김이설은 우리에게 수많은 선화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한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누구도 보려 하지 않았던 흉터 뒤에 가려진 깊고 상처를 말이다. 또한 선화 스스로가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과 먼저 대면하게 만든다.

 불편한 주제라 김이설의 소설을 읽기 버거웠던 독자라면 <선화>를 권한다. <선화>는 이전에 만났던 김이설의 소설보다는 한결 가볍게 다가온다. 지독할 정도로 매서운 눈매가 아닌 부드러운 눈길로 변두리의 삶을 바라본다. 그 안에 더 깊은 애정을 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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