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를 사랑한 박사, 그를 사랑한 나
소수를 사랑한 박사, 그를 사랑한 나
  • 북데일리
  • 승인 2007.03.1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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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나는 소수를 사랑한다. 어떤 이유냐고 묻는다면 딴이 준비해둔 대답은 없다. 하여간 나는 1과 자신만을 약수로 지닌 소수의 고고함을 사랑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신의 비밀 숫자인 소수 중 가장 큰 소수는 9,808,358자리 숫자이다. 2006년 9월에 발견된 숫자로서, 이 발견자에게는 무려 10만 달러의 상금이 돌아갔다.

내가 소수의 고고함을 사랑하게 된 데는, 소수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제대로 인식하게 해 준 소설 <한 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소년은 거의 자폐에 가깝지만 세상의 모든 지식 중에서, 수학만큼은 변화하지 않는 완고성을 지녔다고 생각해서, 수에 집착을 보인다. 나는 지금은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는 소년의 외롭지만, 치열한 집중력에 반해 그만 소수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그 소년의 이름을 ‘소수’라 칭하기로 했고, 마음이 울적할 때는 소년 소수를 떠올리곤 한다.

오래 전 5월 11일, 나는 방안 가득 내리쬐는 햇빛에 몹시 흥분했었다. 각각의 소수로 이루어진 5월 11일, 그날은 주말 중 하루였다. 생각해보니, 매 달 소수로 된 날을 맞을 확률은 1/3이지만, 그 날이 주말인 확률은 1/3 x 2/7로 낮다. 게다가 날마저 나들이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에 부합하다 보면, 그 확률은 더더욱 낮아진다.

하지만 엉성한 계산으로 내게 남겨진 시간 속에서 그 모든 조건에 합당한 소수의 주말을 알아내고 난 다음, 나는 종이를 구겼다. 소수의 날의 의미를 망각하고 흥분해 있던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소수의 매혹은 바로, 고립됨 그 자체를 즐기는 데 있다는 스스로 내린 명제. 그 미학적 완결성이 햇살 아래 뿌옇게 바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내게 있어서는 신성모독과도 같은 것으로까지 느껴졌다.

언젠가부터 이를 영화로 먼저 보려고 벼르고 또 벼르고 있었는데도, ‘박사가 사랑한 수식’과 영상으로의 만남을 이제껏 이루지 못했다. 책이 훌륭하다는, 그래서 영화의 시나리오가 되었다는 평을 듣고 있었지만, 영화를 보기 전까지 책을 펼쳐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잡지사 편집장으로 있는 친구와 출판사 편집장이 거의 같은 시기에 이 책을 필독서로 추천하는 바람에, 나름대로 지켜오던 수순의 철칙을 깨고, 결국 이 책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펼쳤다.

수를 사랑하는 박사, 그는 마흔 일곱이 되던 나이에 교통사고로 두뇌를 손상당한다. 기억을 관장하는 중추가 망가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지속할 수 있는 기억의 범위는 정확하게 80분, 그 너머가 되어버리면 그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다. 마치 올리버 색스 박사가 만난 히피 그레그처럼.(<화성의 인류학자>,올리버 색스 참조)

책 속의 화자, 나는 파출부이다. 스물일곱의 나이지만, 열 살 난 아들 루트가 있다. 아들이 생긴 다음부터 파출부 일을 했기에 전문파출부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그런 나는 박사의 집으로 일을 간다. 노련한 전문파출부에게 박사의 끼니며 집안 청소는 식은 죽 먹기이다. 그러나, 나는 박사가 보여주는 수의 세계에 조금씩 빨려 들어간다.

수의 정연함, 신만의 아는 수의 비밀을 증명하는 박사의 충실한 심부름꾼이 되어, 수학저널에 보내는 박사의 증명을 잡지사에 보내는 특명을 띠고도 있다. 화자, 나의 아들 루트는 열 살이다. 어린 아이를 소수만큼이나 좋아하는 박사 덕에 나는 아들 루트를 박사 집으로 데려가 셋이서 수의 오묘한 매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박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수로 환원해서 질서를 부여한다. 내 전화번호 567-1455는 박사에게는 1에서 1억 사이에 존재하는 소수의 개수로 이해된다. 나와 박사의 만남은 신이 주선해 놓은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가능한 것이다. 박사의 말에 따르자며, 내 생일 2월 20이과 박사가 아끼는 시계에 적힌 일련번호 284는 페르마도 데카르트도 겨우 한 쌍씩밖에 발견하지 못한 우애수라는 것이다.

나(화자)는 박사가 하듯이 수학이 아름다운 리듬을 지닌 우아한 문장으로 구성된 정의라는 것을 깨닫는다. 수학적 문항은 그렇기에 소리 내어 음미해야 한다. “문제에는 리듬이 있으니까, 음악하고 똑같아. 소리 내어 읽으면서 그 리듬을 타면 문제 전체를 바라볼 수 있고, 함정이 숨어있을 만한 곳도 발견할 수 있거든.”

그리하여 나와 내 아들 루트는 난해해 보이던 수학을 음악처럼 노래 부르게 되고, 삼각수, 완전수라는 낯선 개념들까지도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 나는 그리고 내 아들 루트는 박사의 집에서 수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박사에게 우리는 매일 매일이 낯선 사람이다. 매일의 낯설음을 만회하게 해주는 작은 메모쪽지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루트의 열 한 번째 생일이 될 때까지 박사의 집을 드나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사가 가장 완벽한 소수라 칭찬한 열 한 번째의 생일날을 기점으로 우리는 박사의 집을 더는 갈 수 없게 되었다. 80분이나마 지속할 수 있던 박사의 기억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어, 박사는 기억이 멈춘 이 십 여전 전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나와 루트, 그리고 박사 사이의 사랑 어린 우정을 질투한 박사의 형수는 박사와 함께 양로원으로 들어갔다. 그렇지만 나는 루트와 함께 한 달에 한 두 번은 박사를 찾는다. 루트의 생일날, 박사에게 우리가 정성껏 준비해준 야구 카드를 마치 ID 카드처럼 목에 걸고 있는 박사는 어느 덧, 대학 졸업을 코앞에 둔 루트와 함께 캐치볼을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박사는 언제나 4B연필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야, 나는 왜 박사가 소수에 열광했는지 조금은 알 듯 하다. “모든 자연수를 n이라고 하면, 4n + 1 이나 4n - 1. 이 두 가지 중 하나지. 소수의 숫자는 무한한데, 이 두 가지로 분류돼.”

4B 연필로 우아한 공식을 정립했던 박사, 그가 들어준 예는 이러했다.

“4 x 3 + 1 = 13"

"4 x 5 - 1 = 19"

정확하다. 박사의 행복이 계산의 어려움에 비례하지 않았듯, 이제 나와 루트의 삶의 즐거움도 삶의 시련에 반비례하지는 않으리란 것을 깨달았다. 수학의 꽃은 증명하는 것이다. 증명을 위해 투자하는 과정,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숭고함. 그것을 이제 나도, 내 아들 루트도 부인할 수 없다.

지금까지 나(글 쓰는 이)는 이야기 속의 화자가 되어 책을 읽은 소감을 밝혔다. 수학은 어떤 의미로는 음악 보다 아름답다. 수학은 우주의 신비를 벗겨줄 수 있는 코드이다. 로그가 없었더라면, 행성간의 거리를 간략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코스모스에서 스페이스로 옮겨갈 과학의 미래가 체계를 갖출 기반을 가질 수 있을까? 팽창하는 우주를 떠도는 0과 1의 바이너리 디지트, 없음의 0과 있음이 1이, 내 작은 머리에서 사멸하는 별들과, 새로 태어나는 초신성의 백색 빛과 파란 빛으로 점멸한다. 아, 아름다운 수의 세계.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 점멸하는 기억으로도 증명해 보인 박사여. 어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랑합니다.

[김영욱 시민기자 sylplus@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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