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박물관인 경주를 걷다
거대한 박물관인 경주를 걷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9.29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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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경의 『이 고도古都를 사랑한다』

 [북데일리] 가을 하늘은 투명한 도자기를 닮았다. 여기 맑은 도자기 같은 에세이가 있다. 강석경의 『이 고도古都를 사랑한다』(난다. 2014)가 바로 그것. 도자기와 어울리는 은은한 차향(茶香)을 닮았다.

 소설가 강석경은 신라 천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지켜온 경주를 걷는다. 석굴암,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포석정, 안압지 밖에 모르는 내가 남산, 감포, 월성, 황룡사지, 교동을 알지도 못하는 지명을 따라 읊으며 걷는다. 경주는 그저 관광지에 불과했다. 그러니 강석경의 산책로는 신이한 경로였다.

 저자가 들려주는 경주는 작은 골목, 아름다운 곡선미를 뽐내는 고분들, 폐허가 되었지만 여전히 장엄한 신라의 일부로 남은 궁궐터가 전부다. 골목 담 위에 떨어진 감을 먹거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는 능의 풀과 꽃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오늘도 대릉원 담을 끼고 걸어오다 담 위로 솟은 능선을 보며 미소 지었다. 능에는 풀이 돋기 시작했고 초록 풀을 비집고 노란 들꽃이 깔려 있었다. 바람이 부니 까까머리에 돋아난 풀들이 파르르 물결쳤다. 어떤 사심도 구속감도 없으며 순수 자체인 생명들이 우주의 자유를 합창하는 듯했다.’(42쪽)

 눈 닿는 곳마다 고분이 보이는 경주,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보물이 있을 것 같은 곳이다. 발길 닿은 곳마다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도시. 그러므로 경주는 거대한 박물관이다. 이를 아는 강석경은 경주가 품은 태곳적 이야기를 듣고자 노력한다. 걷기를 통해, 삶을 돌아보고 생의 근원을 갈망한다. 그러다 경주를 만든 사람들, 경주를 지킨 사람들, 경주를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 창작과 예술을 이야기한다. 그러니 이 책은 작가 강석경의 내밀한 일기이자 떨리는 고백이기도 하다.

 ‘내가 그릇을 좋아하는 이유는 비어 있기 때문이다. 차라도 담겨야 제구실을 하겠지만 나는 바라보는 것이 더 좋다. 무엇이든 담을 용의를 지니고 겸손하게 비어 있는 모양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99쪽)

 그는 마치 경주를 손금처럼 품은 듯 걷고 또 걷는다. 향토사학자인 고 윤경열 선생 인터뷰를 계기로 경주에 홀려 경주에 정착한 이방인이 아닌 생활자의 산책이라 더욱 생생한 경주를 만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이방인인 독자는 조금 낯설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든 생활자가 아닌 방문객은 모두가 여행자가 아니던가. 그러니 경주 지도 한 장을 꺼내들고 하루 종일 천천히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길이다. 산책하기 좋은 가을, 강석경의 안내를 따라 경주를 걸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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