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바다에 갇힌 아름다운 감옥
술과 바다에 갇힌 아름다운 감옥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8.31 2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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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북데일리]당신은 어떤 액체와 가장 친합니까? '술과 바닷물'과 친한 한창훈 작가가 전작 <내밥상위의 자산어보>에 이어<내 술상의 자산어보>(문학동네,2014)를 완성해 돌아왔다.

1814년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쓴 이후 꼭 200주년이 되는 해다. 작가는 '사람이 밥만 먹고 살수는 없잖아요?' 라며 푸지게 바다술상을 차려놓고 독자들을 초대한다. 섬과 바다의 작가가 들려주는 얘기를 들어보자.

“술, 하면 우선 비틀거리며 귀가하는 집안 어른에 대한 추억부터 떠올리잖습니까? 그런 경우 손에 무언가 맛있는 게 들려 있곤 하니까요. 하지만 우리집은 알코올과 친해보지 못한 이들이 대를 이어왔기에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었기에 제가 마시기 시작했죠. 저라도 마셔야 했죠. 술 마시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그게 집구석이겠어요? 감옥 아니면 수도원이지.”(p107)
 
사람들은 세상이 감옥이나 수도원 같을 때 술을 마신다. 누군들 삶이 그렇지 않을까마는 특히 뱃사람이고 섬사람인 작가는 더 팍팍하고 고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잠은 부족하고 몸 쓰는 일이 부지기수였을 고단함. 그렇다면 그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버틸까.
 
"일하다가 배고픕니다, 소주 마십니다. 외롭습니다, 소주 마십니다. 힘듭니다, 소주 마십니다. 일이 남았는데 잠 쏟아집니다, 소주 마십니다. 다칩니다, 소주로 씻어내고 소주 마십니다. 선장이 지랄합니다, 소주 마십니다. 선장 저도 마십니다. 동료와 시비 붙습니다, 소주 마시면서 화해합니다, 그러다 다시 싸우고 또 소주 마십니다. 여자 생각 간절합니다, 소주 마십니다. 고기가 잘 잡힙니다, 소주 마십니다. 고기가 안 잡힙니다, 소주 마십니다. 항구로 돌아옵니다, 소주 마십니다."(p108~p109)
 
책에 따르면 술이 가진 파급효과는 팔백 쪽짜리 법전法展 보다 쎄고 크다. 삶의 이런저런 문제들을 가장 빨리 해결해 주고 아픈 것을 잊게 하며 미운 것을 용서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책에 등장하는 대표 주종은 소주다. 안주는 해산물이 주를 이루지만, 특별하게 차려지는 술상도 있다.
 
작가가 일본에서 잡아온 참치와 함께 마시는 '조빠리 사케'는 한 잔 털어 넣으면 입안에 폭설이 내리는 듯한 맛이라고 한다. 그것을 자연현상으로 표현하면 "파스텔풍의 구름 사이에서 번개가 번쩍 치는 듯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작가는 최고 아름다운 사람을 취했을 때라고 말한다. 흥취가 솟아났는데도 부드럽고 조심스럽다면 평생 친구로 지내야 한다며 어찌 그런 아름다운 친구와 술을 안마시겠냐며 세상끝 바닷가의 외로움을 전한다.
 
작가는 이 글을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하던 중 일어난 세월호 사고에 비통해한다. 그는 연재를 중단하고 바다로 나갔었다. 집필을 중단한 것도 세월호 사건이지만 끝내 완성하게 한 것 또한 그것이었다며 304명의 아이들 이름으로 묵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바다는 어미와도 같아서 많은 생명을 먹고 살게 해주지만 때론 고달프게 하고 울게 한다. 작가의 말마따나 바다의 잘못은 아닐 테니까.
 
작가는 새로 쓴 자산어보를 통해 세상과 사람 얘기를 꾸려 놓고 뱃길을 알려주는 등대역할을 하고 싶었다. 책을 읽은 독자라면 이미 눈치 챘을 것이다. 작가가 책 속에 그리도 많은 바다술상을 차린 이유를.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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