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예사 캉탈베르는 어떻게 됐을까
곡예사 캉탈베르는 어떻게 됐을까
  • 북데일리
  • 승인 2007.03.1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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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우리 나라에 종교가 있었는가 생각해 봅니다. 글쎄, 있었을까요. 집마다 업을 모시고, 새벽에 맑은 물 한 그릇 떠 놓은 뒤 비손을 하고, 서낭당이나 마을을 지킨다는 나무에 비손을 하는 일은 있었으나, 따로 종교라고 할 만한 믿음은 없었지 싶어요. ‘주 찬양’을 하지 않아도 ‘하느님 사랑’을 알았고, ‘부처님 만세’를 읊지 않아도 ‘온갖 목숨붙이를 자기 몸처럼 여기며 함부로 마주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 캉탈베르는 서글펐다. 그는 곡예를 통해 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 〈‘만화책 <성모의 곡예사>(산티. 2006) 25쪽〉

지금도 이 나라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콜럼버스’라는 사람이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찾은’ 사람이라거나 ‘탐험가’로 가르치는 분이 있으리라 봅니다.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도 곧잘 하고요. 콜럼버스는 스페인 국왕과 계약을 맺고 돈과 영주라는 지위를 얻고자 쿠바며 북미에 있는 여러 섬 토박이를 끔찍하게 죽이고 마을을 불살랐으며, 그곳 사람을 죄 노예로 삼았습니다.

콜럼버스 뒤로도 수많은 ‘탐험가’들은 중남미 대륙에서 어마어마한 학살과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들 중남미 토박이는 아프리카 토박이처럼 노예로 붙잡아 써먹기 어려움을 깨닫고는, 이른바 ‘인종청소’를 합니다. 토박이 문화와 문명을 모두 짓밟고 불사르고 깨부수고 무너뜨리면서. 불타오르는 마을과 외마디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약탈자와 학살자는 한결같이 외칩니다. “하느님 이름으로! 성경 말씀으로!”

북미에서 이루어진 약탈과 학살도 중남미와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방법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고, 중남미 때보다 훨씬 꼼꼼하게 땅빼앗기와 인종청소를 이루어냈습니다. 북미는 중남미와는 달리 통째로 살갗 흰 사람들 나라가 되어 버립니다.

.. 차라리 수사가 되었더라면, 따뜻한 집에 살면서, 친구들하고도 어울리고, 새들에게 모이도 주면서, 이 세상의 불행 따위는 모르고 살아갈 수 있을 터인데. 그리고 성모님께 말씀드릴 수도 있을 터인데, 이 서글픈 마음을. 그러면 성모님께서는 모두 다 이해해 주시겠지 .. 〈49?51쪽〉

서양 종교가 발을 디디거나 뿌리를 내리는 나라치고, 그 나라나 겨레한테 고유하게 있던 문화와 버릇과 삶과 터전이 고이 이어가는 곳을 보지 못합니다. 앞에서는 사랑을 말하고 입으로는 나눔을 읊지만, 정작 이루어지는 일은 빼앗음과 괴롭힘이었어요.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믿음으로 사랑과 나눔을 함께하려고 애쓴 마음 착한 이들은 틀림없이 있습니다만, 권력을 쥐고 사회를 움직이며 사람들한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휘두르는 종교라는 방망이는 여린 이를 내리치거나 짓누르거나 울궈내는 연장일 뿐입니다.

하느님은 바퀴벌레도 사랑하고 까마귀도 아끼며 구렁이도 어여삐 여기리라 믿습니다. 닭공장에서 전기불빛에 눈이 벌건 채 알만 낳고 잠을 못 자는 어미닭도 사랑하고, 비닐집에서 사료와 농약을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 딸기며 토마토며 푸성귀도 사랑하시겠지요. 개미는 개미라서 사랑하고, 비둘기는 비둘기라서 사랑하며, 고등어는 고등어라서 사랑하리라 믿습니다.

독일사람은 독일사람이라서, 네덜란드사람은 네덜란드사람이라서, 헝가리사람은 헝가리사람이라서 사랑하리라 믿습니다. 이리하여 키체 부족 사람은 키체사람이라서 사랑하고, 이러쿼이 부족 사람은 이러쿼이사람이라서 사랑하며, 류우큐우 부족 사람은 류우큐우사람이라서 사랑하리라 믿습니다.

.. 수도원의 모든 형제들은 각자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크리스마스를 맞아 성모 마리아께 바칠 선물을 마련하기에 바빴다. 누구는 책을 쓰고, 누구는 조각을 하고, 누구는 요리를 하고, 누구는 시를 짓고, 누구는 작곡을 하고, 누구는 그림을 그렸지만, 캉탈베르는 뭘 해야 할지 몰랐다 .. 〈82?84쪽〉

만화 <성모의 곡예사>에 나오는 ‘곡예사 캉탈베르’는 북중남미에 살던 토박이 같은 사람이었을까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자기가 즐길 수 있는 놀이, 자기가 가진 재주를 또렷하게 깨달으며 사는 사람. 남 앞에 우쭐거릴 줄 모르며, 자기가 기쁘고 즐겁게 맞이하는 일과 놀이를 기꺼이 이웃과 나누려는 사람. 자기가 가진 것은 자기 혼자만 누릴 것이 아니라 이웃과 스스럼없이 함께 누릴 것으로 여기는 사람. 꾸밀 줄 모르고 감출 줄 모르며 덧바를 줄 모르는 사람. 있는 그대로 내보이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사람.

곡예사 캉탈베르는 자기한테 하나 있는 재주 ‘곡예’로 세상을 아름답게 보듬으며 살고자 했습니다. 이 뜻이 성모 마리아님한테, 다른 수사들한테 건네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북중남미 토박이를 거의 모두 죽이고 없앤 살갗 하얀 사람들은 오늘날에 와서 ‘북중남미 토박이 슬기를 배우고 나누자’며 이들이 입으로 남긴 이야기를 책으로도 묶고 이들 삶을 좇아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강의하고 교육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북중남미 토박이는 죽었습니다. 곡예사 캉탈베르는?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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