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명문장]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책속의 명문장]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7.25 0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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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중에서

  [북데일리] <애도 일기>(이순. 2012)는 <사랑의 단상>으로 잘 알려진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일기다. 매일 매일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담은 짧은 기록은 때로 날카롭고, 때로 아프다. 2년 동안 쓴 일기 가운데 놀랍도록 아름다운 몇 편을 소개한다. 

 ‘내가 놀라면서 발견하는 것―그러니까 나의 걱정 근심(나의 불쾌함)은 결핍이 아니라 상처 때문이라는 사실. 나의 슬픔은 그 무엇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나는 모자라는 게 없다, 내 생활은 전처럼 아무 문제가 없다), 그 무엇이 상처받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 상처는 사랑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상처라는 것. (1978년 11월 24일, 75쪽)

 사랑이 그런 것처럼 애도의 슬픔에게도 세상은 비현실적이고 귀찮은 것일 뿐이다. 나는 세상을 거부하면서,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 세상이 나에게 주장하는 것 때문에 괴로움을 당한다. 나의 슬픔을, 나의 삭막함을, 나의 무너진 마음을, 나의 날카로운 신경을 세상은 자꾸만 심해지게 만든다. 세상이 나를 점점 더 기운 빠지게 만든다. (1978년 5월 18일, 136쪽)

 자기만의 고유한 슬픔을 지시할 수 있는 기호는 없다.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78년 6월 24일, 165쪽)

 애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선은 급성의 나르시시즘이 뒤를 잇는다 : 일단은 병으로부터, 간호로부터 벗어나게 되니까. 하지만 그 자유로움은 차츰 빛이 바래고, 절망감이 점점 확산되다가, 나르시시즘은 사라지고 가엾은 에고이즘, 너그러움이 없어진 에고이즘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1978년 8월 1일, 189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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