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삶이라는 여행에 동행하다
소설, 삶이라는 여행에 동행하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6.05 1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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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도시를 소재로 한 테마소설집

 [북데일리] <그 길 끝에 다시>(2014. 바람)는 여행과 도시를 소재로 한 테마소설집이다. 김미월, 백영옥, 손홍규, 윤고은, 이기호, 한창훈, 함정임 7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맨 먼저 소설로 만나는 도시는 백영옥이 선택한 속초다. 소설 「결혼기념일」은 뒤늦게 전 남편의 부고를 전해 듣고 결혼식을 했던 속초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서울에서 속초를 향한 여정은 낯설기만 하다. 터널이 생기고 미시령 휴게소는 사라졌다. 과거의 속초를 찾을 수는 없었다. 속초와 함께 사랑과 추억도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손홍규의 「정읍에서 울다」는 제목에서 말하듯 정읍이 배경이다. 파킨슨 병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화자는 아내가 기억하는 정읍댁이 아기 때 폐렴으로 잃은 첫 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아내가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게 딸이었던 것이다.

 제주를 선택한 윤고은의 「오두막」은 아름다운 섬에서 벌어진 잔인한 살인사건을 들려준다.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제주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섬뜩한 이야기는 신선하다. 정착과 부유의 삶에 교차하는 여수의 풍경을 담은 한창훈의 「여수 친구」와 여행자가 발견한 춘천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김미월의 「만 보 걷기」는 풍경화를 묘사하듯 담담하여 작가의 이야기는 아닐까 착각을 불러온다.

 ‘항구란 그런 곳이다. 가는 사람은 멀리 가고 오는 사람은 먼 곳에서 온다. 그날도 아마 서울 경기 지역에서 굳은 결심으로 가출하여 내려온 이들이 있었을 테고 그들처럼 친구도 올라간 거였다. 커다란 하천을 통해 낮은 곳으로 흐르는 육지의 물과, 수평을 흐르는 해류의 바닷물, 그리고 철썩이는 파도가 만나서 뒤섞이는 곳이 항구인데 그런 탓에 이곳에서의 삶이란 수직과 수평의 이동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여수 친구」173~174쪽)

 소설 외에 이 책이 인상적이었던 건 수록된 작가 인터뷰였다. 어떤 작가는 소설의 내용과 이어지는 공적인 느낌의 인터뷰였고, 어떤 작가는 작가 개인의 사적인 인터뷰였다. 자신을 잃어가는 아내를 통해 삶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보여주는 「정읍에서 울다」의 작가 손홍규가 물음표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그렇다.

 ‘단어가 그렇듯이 문장부호도 하나의 발화거든요. 단어는 마음에 안 들면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단어를 찾을 수 있지만 문장부호는 그런 호환이 어렵잖아요. 특히 이 소설에서는 물음표로 담을 수 없는 어감을 살리기 위해 고심했어요. 부부의 대화는 대부분 묻는 말과 대답하는 말로 이루어졌지만 묻는 말에는 물음 너머의 의미가 담겨야 하고 대답하는 말에도 대답 너머의 의미가 담겨야 해요. 물음표를 사용하면 삭제했을 때 마땅히 물음표가 있어야 할 자리였기 때문에 반쯤을 물음의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또한 물음표가 없기 때문에 물음 너머를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았지요.’ (작가 인터뷰 중에서, 221쪽)

 소설로 만나는 도시는 친근하면서도 생경하다. 작가들이 선택한 도시의 풍경은 어떤 이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아픔과 고통을 안겨준다. 현지인과 이방인의 차이는 없다. 어디서든 각자의 삶이 존재할 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 도시와의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곳에 동행한 이들, 그곳에 남겨진 추억들 말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곳을 향해 떠날 차비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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