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세상을 보면....'그가 그립다'
아픈 세상을 보면....'그가 그립다'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4.05.25 2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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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을 회고하는 기록

[북데일리] “미안해서 보고 싶다. 미안해서 만지고 싶다. 미안해서 울고 싶다. 세상 모든 ‘싶다’는 그를 위해 만들어 둔 말일 것이다. 그가 그립다.” - 정철 (카피라이터)

5월 23일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5주기가 되는 날이다. 고인을 그리워하는 지인들 스물 두 명이 함께 책을 썼다. 신간 <그가 그립다>(생각의 길. 2014)는 그들이 노 전 대통령의 진솔한 모습을 회고하는 기록들이다. 유시민, 조국, 정철, 신경림, 정여울, 류근 등이 참여했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을 전해주거나, 그의 삶과 정신을 떠올리며 그리움과 희망을 노래한다. 글들은 짤막하고 다양한 형식으로 쓰여졌다.

‘민주주의란 물이나 공기처럼 아주 당연하게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생각했었다는 젊은 작가 정여울. 최근 그녀는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사람들과 만났다. 도서관 소식지에 영화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기로 약속하고 영화 <변호인>에 대해 썼다. 며칠 후 잡지를 기다리는 그녀가 받은 것은 ‘게재 불가’ 통보였다.

“날씨를 피할 수 없듯이, 민주주의의 가뭄을 피할 방법도 없다는 것을, 저는 당신이 떠나신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숨어 살면 될 줄 알았습니다. 추위를 피해 집 안에만 웅크리고 있는 게으른 아이처럼요. 저도 민주주의의 한파를, 민주주의의 가뭄을, 민주주의의 고사 상태를 피해 보려 했습니다. 소박하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제 작은 보금자리 안에 꽁꽁 숨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겁 많고 소심하며 ‘정치’의 ‘정’ 소리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는 저 같은 사람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요.” (p.12, 정여울의 '오랜 자폐를 털고'중에서)

글을 쓰고 싶은 대상을 스스로 고를 수 없는 상황을 접하고 그녀는 자신이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이 세상에는 아주 당연해 보이는 권리를 얻기 위해 목숨까지 걸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데, 밝고 단순하고 명쾌한 이야기만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녀는 다짐한다.

“제가 하께요, 변호인. 하겠습니더.” (p.21)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이 영화 <변호인>을 보고 난 후 들려주는 이야기다

“변호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지난 시기 십여 년 정도 정치를 했다. 그 가운데 5년은 국회의원이었고 1년 5개월은 장관이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큰 권력과 영향력이 있었던 만큼, 마음만 먹었다면 더 많은 사람의 변호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마음을 때린다. 나는 변호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는 변호인이 되어 주려고 노력했지만, 다른 누군가에 대해서는 변호인이 되기 싫은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중략)

나는 ‘힘 있는 자리’에 있었을 때, 더 많은 억울한 사람들의 변호인이 되어 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치에 뛰어들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것만은 크게 후회한다.” (p.94~p.95, 유시민의 '변호인이 된다는 것‘중에서)

이제 그는 말한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의 변호인이 될 수 있으며 생활공간 어디서나 활동할 수 있다”고. 그들이 누구이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든, 억울한 고초를 당하는 이웃을 도움으로써 스스로 옳은 삶을 살고 있다는 내면의 기쁨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기에 그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책에서 전속 이발사 정주영씨는 노 대통령이 올백 스타일의 머리를 좋아했고 이발을 하는 동안 ‘도전 골든벨’ 같은 퀴즈를 즐겨 풀었다는 일화를 들려주기도 한다. 청와대 총주방장 신충진씨는 막창구이, 라면 등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을 나열하며 그를 추억한다. 독자들은 가장 가까이에서 그와 일상을 함께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노무현’을 만날 수 있다.

저자들은 ‘현재의 시련을 딛고 일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뜻’을 모아 이 책의 인세를 ‘노무현장학금’에 기부하기로 했다. 조관우가 부른 타이틀 곡 ‘그가 그립다’가 수록된 북 테마앨범 CD를 한정 수량 증정하기도 한다. 그에게 미안하고 그가 그리운 사람들은 책을 통해 작은 위로와 새로운 희망을 얻을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었던 윤태영이 최근에 쓴 <기록>도 함께 읽어볼 만하다. <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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