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면 가슴 시린 추억의 집
생각하면 가슴 시린 추억의 집
  • 이수진 시민기자
  • 승인 2014.05.21 15: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장통을 겪는 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기를”

[북데일리] 천장과 벽에 붙어 있는 꽃무늬 벽지는 아버지의 담배 연기 때문에 누레져 있었고 거울도 검게 그을려 얼룩덜룩했어요. 장롱도 한쪽 다리가 휘어져 삐딱하게 서 있었어요. 장롱도 한 쪽 다리가 휘어져 있었어요. 텔레비전, 옷걸이, 선반. 그 어떤 것도 깨끗하거나 빛을 내는 게 없었어요.14쪽

7평 짜리 순희네 집의 풍경이다. 옆집과 비교해 가난한 살림살이를 보며 순희는 따뜻한 집을 꿈꾼다.

<순희네 집>(유순희.푸른책들.2014)은 저자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소설이다. 순희네집 안팎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애틋한 이야기를 촘촘히 엮었다. 어린 순희는 이제 두 딸의 엄마가 되어 있다. 이 책은 제 ‘14회 MBC창작동화대상 수상작을 다듬어 청년소설로 펴낸 작품이다.

초등학생 순희는 재개발예정인 산동네 B지구에 산다. 집은 어둡다. 엄마는 돌아가시고 늙은 아버지와 함께 산다. 순희는 혼자 있는 시간에 손바닥만한 마당에서 햇빛 놀이도 하고 마루 밑에 있는 돈 벌러 간 언니 오빠들의 신발을 보며 논다. 순희는 늘 배가 고프다. 친구를 불러 쓰디쓴 호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옆집아줌마가 준 부침개를 먹으며 허기도 달랜다.

어느 날, 순희는 입술병에 걸린다. 홀로 아픔을 꾹 참고 벽을 파면서 엄마를 그리워한다.

‘이 벽을 파면……엄마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손톱에 피가 맺혔어요. 입술보다 손톱이 더 아프기 시작했어요. 신문지가 뜯어지고 마른 흙 부스러기가 떨어졌어요. 손톱으로 아무리 흙을 파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어요.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엄마는 죽었다던데……죽었다는 게 뭐야. 왜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아. 그냥 죽었다고 하면……어떡해.’-44쪽

우연히 옆집 재석이네 엄마가 찾아와 약을 발라줬다. 어린 아이가 혼자 아픈 모습에 마음이 짠한 재석이 엄마는 순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좀 참아라. 크려고 그러는 거다……크려면 몸도 마음도 아픈 거란다.”

순희는 엄마가 그리워서 아팠을까. 아파서 엄마가 그리웠을까. 몸과 마음이 커가는 시기의 입술병은 한 번쯤 치러야할 성장통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른들 말이 ‘아프면서 큰다’라고 하지만 어린 순희는 외로움을 스스로 견딜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순희는 낮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집은 더 춥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책 속에 햇빛에 대한 묘사가 더 아프게 다가온다.

햇빛만이 고양이 눈처럼 골목에 도사리고 있었어요. 순희는 햇빛을 노려보았어요. 햇빛은 사람들과 집들을 모두 가두어 버린 커다란 공 같아요. 햇빛공이에요. 햇빛공은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부드럽지만 절대로 찢어지거나 부서지지 않아요. 순희는 햇빛공 안에 던져진 물고기 같아요. 물이 없는 그곳에서 퍼덕거리는 것만 같아요. 순희는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햇빛을 노려다보다가 쓰러졌어요.-44쪽

책은 100여 페지이지로 얇다. 하지만 순희의 추억이 책갈피마다 베어 있어 묵직하게 느껴진다. 순희가 어둡고 추웠던 집을 그리워하는 건 그 곳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달콤하고 쓰고 아픈 추억이 묻어 있기 때문 아닐까. 마치 버리고 싶지만 시간의 더께가 쌓여 차마 버리지 못하고 끌어 안고 있는 낡은 일기장처럼. <이수진 시민기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