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명문장] 언어의 집은 입이고, 주인은 혀와...
[책속의 명문장] 언어의 집은 입이고, 주인은 혀와...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4.05.19 0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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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맛>중에서

[북데일리]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냥 살기 힘들다고 말해도 될 것을 먹고살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먹는 것과 사는 것이 결국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즉 산다는 것은 먹는다는 것이다.

<18세기의 맛, 부제: 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문학동네. 2014)은 맛을 키워드로 18세기의 문화현상을 소개하는 책이다. 다음은 울산대 국문과 소래섭 교수가 ‘맛을 말한다는 것’에서 설명한 글이다.

   

  “모든 행위가 먹는 행위에 우선할 수는 없지만 먹는 것에 견줄 만한 유일한 행위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말하기다. 먹기와 말하기가 동등한 이유는 두 행위 모두 입과 혀를 거치기 때문이다. 입은 우리 몸의 외부와 내부 사이에 위치하며 통과와 중계를 위한 장소이다.(프란체스카 리고티, <부엌의 철학>, 권세훈 옮김, 향연, 2003).

외부의 음식은 입을 통해 들어오고 내부의 말은 입을 통해 나간다.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도덕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입안에서 교차한다. 입이라는 장소에서 외부와 내부를 중계하는 주인은 혀다. 혀 위에서는 중계의 과정만이 아니라 전환의 과정까지 펼쳐진다.(하이드룬 메르클레, <식탁 위의 쾌락>, 신혜원 옮김, 열대림, 2005).

혀는 자신이 받아들였던 것, 먹었던 것, 즐겼던 것을 언어로 다시 돌려준다. 외부와 내부가 각기 별개로 존재할 수 없듯이 먹는 것과 말하는 것은 긴밀하게 얽혀 있다. 즉 우리는 말하기 위해서 먹고, 먹는 것만큼 말할 수 있고, 먹는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중략)

그러므로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면, 언어의 집은 입이고, 언어의 주인은 혀와 목구멍이다. (중략) 어떤 음식은 과거를 불러내고, 또 어떤 음식은 현실을 상기시킨다. 본능의 맨살을 드러내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환상을 응축시킨 음식도 있다.” (p.306~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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