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대한 무관심 일깨우기
역사에 대한 무관심 일깨우기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5.07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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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의 <新 황태자비 납치사건>

[북데일리] 김진명의 <新 황태자비 납치사건>(새움. 2014)은 일본의 황태자비가 고교 동창과의 만남 도중 괴한에게 납치된 사건으로 시작한다. 누가 감히 일본 국민 모두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황실의 황태자비를 납치했던 것일까. 수사본부가 만들어지고 일본 최고의 경찰인 다나카 경시정이 사건을 맡는다. 다나카는 황태자비와 대학 선후배 사이로, 마음이 더욱 복잡하다.

 소설은 다나카가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과 범인이 황태자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두 가지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상하게도 범인은 황태자비에게 공포나 두려움을 조성하는 게 아니라 최고의 예의를 지킨다. 자신을 지역의 유지라고 소개할 정도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 사이코패스는 아닐까? 점점 범인에 대한 궁금증은 커진다.

 다나카는 용의자로 지목된 중국 유학생 펑더화이가 돌연 미국으로 출국한 사실에 당황하고 공범이 있다는 걸 확신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중국에 간 다나카는 놀랍고 잔혹한 진실과 마주한다. 펑더화이의 할아버지가 ‘난징대학살’(1937년 12월∼1938년 1월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과 그 주변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중국인 포로·일반시민 대학살 사건)의 생존자였고 평생을 지옥과 같은 삶에서 살다 죽은 것이다.

 다나카는 일본인으로 그와 같은 역사를 모르고 있다는 게 부끄러웠다. 펑더화이가 일본에 향한 분노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황태자비의 안전이었다. 때마침 범인은 신문 광고를 통해 일본 정부에게 두 가지 문서를 공개를 요구한다. 그것은 외무성이 보관하는 「한성공사관발 전문 제 435호」와 1937년 12월 13일 자 <동경일일신문>이었다.

 문서의 내용은 무엇일까? 범인은 황태자비가 과거 문서고에서 일했을 때 그 문서를 보았을 것이라며 내용을 떠올려보라고 말한다. 그러나 황태자비는 그런 문서에 대한 기억이 없다. 오히려 왜 그 문서가 자신의 납치와 관련이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황태자비는 문서의 내용이 1895년 8월 20일에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관한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더불어 과거의 잘못을 일본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까지 검증받으려 한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역사는 주장이야. 사실을 잔뜩 열거해 늘어놓고 크고 작은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이 역사가 아니야. 역사란 어떤 시각을 가지고 그 시각에 따라 사물과 현상을 배치하는 거지.” 191쪽

 정말 역사는 주장일까. 아니,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살아남은 자가 원하는 대로 쓰였을지 모를 우리의 역사를 생각하니 섬뜩하다. 김진명은 일본 황실의 황태자비의 납치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무관심 속에서 잠자는 우리의 역사의식을 깨운다. 소설을 읽은 후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운 이는 나뿐이 아닐 것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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