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이름만으로 산 책 `길위의 생`
작가의 이름만으로 산 책 `길위의 생`
  • 북데일리
  • 승인 2007.03.0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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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제목이 아닌 작가 이름만으로 주저하지 않고 읽을 책이 얼마나 될까. `이 작가의 책이라면` 이라는 마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책을 고를 수 있는, 자신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작가가 과연 얼마나 될까. 고민해 볼 일이다. 나에게 그런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나쓰메 소세키’이다.

사실 이 책 <길 위의 생(道草)>은 도서관을 지나다 나쓰메 소세키의 이름이 붙었다는, 그리고 내가 아직 읽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했다. 내용이 익숙해 찬찬히 살펴보니 3년 전쯤에 이미 <한눈 팔기>라는 책으로 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확실히 좋은 책이라 그런지 그때와 지금은 사뭇 감상이 다르다.

나쓰메 소세키, 그의 자서전?

<길 위의 생(道草)>은 상당 부분 자전 적인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죽기 직전에 완성한 최후의 장편이기 때문에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은 그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을 혹은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주인공겐조는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정착을 하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그는 어린 시절 다른 집에 양자로 보내졌다가 다시 돌아오게 되는 등 복잡한 일을 겪었다. 그런 기억을 안고 있는 그에게 자신의 양부, 양모였던 이들이 찾아와 돈을 요구하게 되는 일이 소설의 한 축을 이룬다. 또한 주인공의 부인을 비롯한 자신의 가족, 친족과 주인공 겐조 사이에 매울 수 없는 간극을 보여주는 일이 이 소설의 다른 두 번째 축이다.

사실 <길 위의 생(道草)>은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내용 자체가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심난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심난한 이야기를 현대 일본 작가들의 특유의 문체로 가볍게 풀어 나간다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쓰메 소세키에게는 그런 문체를 절대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행인>,<마음>을 재미나게 읽은 독자에게는 이 소설이 갑갑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일본 문학의 한 축, 나쓰메 소세키

한국에서 일본 번역서가 더 많이 읽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런 현실에 대해 뭐라 할 말은 없다. 읽고 싶은 걸 써내는 그들의 감각에 놀랄 뿐이지, 그 사실에 대해 뭐라 할 바는 못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 일본 문학만을 그것도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류의 상당히 감각적인 문체에만 익숙한 한국 독자들은 나쓰메 소세키가 조금은 버거울지도 모른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문학을 나름 두패로 구분했을 때, 흐르고 있는 한 축을 지금까지도 담당하는 꽤나 무거운 작가이다.

일본 문학에서 감각적인 문체로 심각하지만 가볍게 글을 써내려가는 하루키나 바나나 류의 글이 있다면, 한편에는 갑갑할 정도로 감각적인 문체와는 거리가 있는 다자이 오자무, 오에 겐자부로, 미루야마 겐지와 같은 작가들이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미루야마 겐지 라인의 대부쯤 된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감각적이지 않은 오히려 요즘에는 쓰지도 않을 것 같은 가장 고답적인 소설 형식과 문체를 가지고 항상 녹록하지도 않은 문제를 열심히 쓰고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말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소설을 뚝! 하고 끝내 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진지한 문체를 가지고 (그렇다고 다른 이들이 진지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는 그네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일본 문학의 밑바닥을 흐르는 힘은 이런 작가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작가들이 든든히 바닥을 혹은 기본을 받치고 있기 때문에 오늘 날 일본의 젊은 작가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그런 생각을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정말로 끝이 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끝나는 것이란 하나도 없어, 일단 한 번 일어난 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그저 여러 가지 형태로 모양만 바꾸는 거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

겐조의 어조는 토해내듯 쓰디썼다. 아내는 말없이 아기를 끌어안았다.(pp.310-311)

나쓰메 소세키, 인생에 대한 그의 고찰

나쓰메 소세키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말이 굳이 없어도 이 책을 읽는대는 무리가 없다. <길 위의 생(道草)>은 상당히 인생에 대한 어느 정도의 연륜이 있어야 쓸 수 있는 책이라는 인상을 읽는 내내 지울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어린 시절 과거에 양부에게 얻었던 인간에 대한 거부감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겐조의 심리 묘사를 읽고 있노라면 그렇다. 또한 일반적인 소설에서 등장할 것 같은 아내에 대한 혹은 자신의 친족들에 대한 무한한 사람 대신에, 겐조의 그들에 대한 환멸 때로는 경멸에 가까운 시선은 읽고 있자면 씁쓸한 입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다.

천재적인 글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글에는 항상 깊게 마음을 때리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 혹자는 그것을 일본인의 기본 심리라고도 하지만 그것 까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그의 꽤나 갑갑하다고 까지 부르고 싶은 심리 묘사를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그의 경험을 들으면서 고민과 고찰을 들으면서 나까지 덩달아 심난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3년 전 어느 무더운 여름에 읽었던 글과 2007년 추운 겨울에 읽은 글은 나에게 꽤나 큰 간극으로 다가왔다.

<길 위의 생(道草)>은 같은 번역자가 문학과 의식이라는 출판사에서 <한눈팔기(道草)>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사실 책 제목이 도대체 왜 <한눈팔기(道草)>인지 이해를 못했는데, 번역자가 써놓은 후기를 읽고 나서야 꽤나 공감했다. 왜 이 부분을 예전에는 써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제목이 더 제대로 된 것 같기는 하다. <길 위의 생(道草)>이라니, 생각할수록 꽤 괜찮은 것 같다.

[이경미 시민기자] likedream@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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