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명문장] 비누는 보석같이 영롱한...
[책속의 명문장] 비누는 보석같이 영롱한...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4.04.17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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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의 시간을 담다>중에서

  [북데일리] 현실 속에는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보통은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서 무심히 지나쳐 버린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그것을 알아보는 혜안을 갖고 있다.

<공명의 시간을 담다>(안그라픽스. 2014)는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로 알려진 구본창의 사진 에세이집이다. 그의 사진 속에는 작은 새와 나비, 바다나 눈처럼 조용한 자연, 비누나 빗자루같이 시간과 함께 사라져 가는 것들, 그리고 우리 전통의 탈과 백자 등이 주로 등장한다. 생활 속에서 무심히 지나쳐 버리다가도 문득 놀라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저자에게는 비누가 그런 물건들 중의 하나이다.

“비누는 자기 몸을 녹여 거품을 만들고 그것으로 우리의 때를 씻어 낸다. 그렇게 비누는 결코 멈추는 법 없이 끊임없이 소멸한다. 비누에게는 살아가는 행위가 곧 죽어가는 행위이다. 그러나 우리가 비누의 마지막 순간을 목격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다 써서 닳아지거나, 실수로 하수구에 빠뜨리거나, 또는 새 비누와 합쳐져서 그냥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연장을 사용하여 개성 있는 모습으로 연마할 수 있는 돌멩이를 은자隱者라 한다면, 거품을 내며 조용히 사라져 가는 비누는 얼굴 없는 노동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심코 흘려버리기 쉬운 사라짐의 순간에 나의 카메라가 포착한 비누는 보석같이 영롱한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었다.

이런 존재가 우리 주변 곳곳에 숨어 있다. 내가 찍으려는 사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나 현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이렇게 끊임없이 사라져 가고 있는 주변의 것들이다. 렌즈에 담기는 모습들이 그 각각의 사라짐의 순간이라는 점에서 사진가의 작업과 비누는 공통점을 갖는다.” (p.189~p.194)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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