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통해 삶 깨우치는 만화 `해피투게더`
배구 통해 삶 깨우치는 만화 `해피투게더`
  • 북데일리
  • 승인 2007.03.05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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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살아가며 나이를 생각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책방 나들이를 하며 책 하나 고를 때에도, 다른 이 일손을 거들며 땀을 흘릴 때에도, 밥을 할 때에도, 설거지를 하고 걸레를 빨아 방을 훔칠 때에도.

나이 스물에도, 스물다섯에도, 서른에도 높다란 언덕길을 낑낑대면서 신나게 자전거로 넘었습니다. 어느덧 서른셋이 된 이 나이에도, 자전거로 언덕길 넘기는 늘 즐깁니다. 앞으로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도 지금처럼 살겠지요. 힘은 떨어질지 몰라도. 이마에서 땀이 방울져 뚝뚝 떨어져도.

.. “얼마 남지 않았어. 시합에서 이기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절실히 느끼게 돼. 지금까지 계속 지면서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어. 그때마다 내 형편없는 실력과 연습부족에 좌절하면서 그 이상으로 미련이 남는 게 있었어. 만약에 이겼으면, 모두와 또 같이 시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니까, 지금까지 못한 것을 채우자. 반드시, 반드시 이기자.” .. 〈6권 136?138쪽〉

배구부 동아리 활동을 하며 고등학생 1?2년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 <해피투게더>(학산문화사. 2005)를 봅니다. 거친 몸싸움이 없고 오로지 자기 재주와 훈련으로만 부딪혀서 이기고 짐을 겨루는 경기인 배구. 어느 쪽이든 반칙을 할 수 없고, 반칙이 나올 수 없는 경기인 배구. 축구나 농구처럼 ‘심판이 안 보이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옷을 잡거나 다리를 걸거나 팔꿈치로 찍는’ 못된 짓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배구. 그만큼 자기 다스림과 자기가 꿈으로 몸을 만들고 솜씨를 쌓아야 하는 경기인 배구. 배구를 즐기면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튼튼해집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펄쩍펄쩍 뛰면서 온갖 생각을 잊을 수 있습니다. 한편, 고요히 자기를 돌아보며 마음을 다독이기도 합니다. 잠깐도 눈을 뗄 수 없이 경기에 빠져들어야 하지만, 숨 가쁘게 돌아가는 가운데 내가 어디에 어떻게 서 있나를 돌아보게 된 달까요.

만화 <해피투게더>에 나오는 여섯 아이는, 저마다 다 다른 집안에서, 저마다 다 다른 생각으로, 저마다 다 다른 꿈을 안고 살아가다가 만납니다. 딱히 ‘배구’에서 만나야 할 까닭은 없었지만, 한삶을 바칠 만한 대상으로 삼은 아이가 있고, 뜻하지 않은 때에 짜릿함을 느끼며 자기 마음 더 깊은 데를 찾아보고 싶은 아이가 있으며, 세상 편견에 맞서고 싶은 아이가 있습니다. 겉멋에 홀려 찾아드는 아이가 있고, 우리 삶 깊은 자리를 파헤치는 가운데 찾아드는 아이가 있고, 동무 따라 강남 가듯 흘러드는 아이가 있습니다. 따로따로 노는 이 아이들은 어떻게 배구에서 ‘모이’고, 어떻게 자기 삶에서 ‘저마다 흩어져’ 살아가게 될까요.

? “우리도 할 수 있어.” 〈5권 36쪽〉

? “레이코, 처음으로 슬라이딩하면서 공을 잡았구나. 아주 잘했어.” 〈5권 50쪽〉

? ‘너는 이 도시를 좋아하고, 줄곧 이곳에서 살아가겠지.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조금은, 마지막으로 조금은 봤는지도 몰라. 이 도시의 빛깔을.’ 〈5권 99쪽〉

만화를 보는 내내 ‘일본도 우리하고 크게 다를 바 없구나. 학교를 다니는 이 아이들한테 길잡이가 되거나 길동무가 되는 교사는 찾아보기 힘들구나. 아예 없지는 않지만.’ 하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한테 말벗이 되고 스승이 되고 제자도 되었다가 도움이가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받치는 기둥, 밑바탕이라고 할까요. 다른 동무한테 힘을 내라며 건네는 한 마디는, 다름 아닌 자기한테 힘을 내라는 울림입니다. 자기 속으로 되뇌이며 마음을 다잡는 굳센 믿음은, 다름 아닌 다른 동무들이 모두 자기 자리에서 더욱 자기를 믿고 힘내라는 응원이기도 합니다. 자기 길을 찾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스스로이지만, 그 길에는 자기만 홀로 떨어져 있지 않고 옆이나 뒤에 동무들이 있으며, 다른 동무들도 마찬가지로 자기 길을 꿋꿋하게 걸어야 하지만 그 길옆이나 뒤에도 언제나 다른 동무들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 “그러면 안 되나요? 저처럼 요령이 없고, 아무 재주도 없는 애가, 설령 착각일지라도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선생님 보시기에는, 제가 언제까지나 형편없는 인간일지 모르지만, 저는 그걸 만회하기 위해 제 진로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 〈6권 87?88쪽〉

만화에 나오는 아이들이 그저 만화 주인공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멀거니 구경하듯 바라보는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 하나마다 제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제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하며, 제 앞길을 내다보게 합니다. ‘너 지금 얼마나 즐겁니?’ 하고 자꾸자꾸 말을 겁니다. ‘너한테 소중한 일은, 사람은, 사랑은, 놀이는, 세상은 무엇이니?’ 하고 끊임없이 묻습니다. 저는 요사이 사랑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데, 사랑은 언제나 제 곁에 있었으며 앞으로도 곁에 있겠구나 싶습니다.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을 뿐이며, 좀 더 가까이 다가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고, 잃었다고 생각했구나 싶습니다.

..

다만, 이 만화책을 보는 내내 한 가지 아쉬웠습니다. 영어로 지은 책이름 <해피투게더>를 보고는 정나미가 떨어졌거든요. 니노미야 토모코라는 사람이 그린 이라는 만화책을 볼 때에도 그랬습니다. 책이름을 왜 이렇게 지을까요. 이렇게밖에는 못 지을까요. 은 도시에서만 살던 아가씨가 농사짓는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시골 총각한테 시집가서 살아가는 줄거리로 된 만화책입니다. 만화는 퍽 짜임새 있고 재미도 있지만, 책이름 ‘그린’만 보아서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해피투게더’도 마찬가지. 일본사람들이 영어 쓰기를 좋아한다지만, 우리말로 옮기면서 책이름을 우리 삶과 문화에 걸맞게 풀어내 주면 한결 나았지 싶은데. “함께 웃는다”나 “다 함께 즐겁게”나 “함께 있어서 좋아”처럼.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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