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묵직한 체증이...
읽는 내내 묵직한 체증이...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2.06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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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삶은 끝모를 여행

 [북데일리] 아들과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 그 사정을 모르는 이에게 그들의 풍경은 따뜻하고 정겹다. 김정남의 <여행의 기술>(작가정신.2013)은 아들과 아버지의 여행 이야기이자 지난 삶의 궤적을 돌아보며 죽음을 향해 나가는 여정을 들려준다. 

 소설가이자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승호에게 아들 겸이가 있다. 열한 살이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자신만의 세계로 가득한 자폐아이기 때문이다. 아내의 노력은 헌신적이지만 심한 발작 증세까지 동반해 약을 먹어야 한다. 삶 그 자체가 고통이었던 아내는 집을 나갔다. 승호가 택한 길은 겸이와 함께 죽는 것이다. 죽음을 선택하고 떠난 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고향인 속초 아바이 마을이었다.

 소설은 승호가 자신의 삶의 흔적을 돌아보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내연녀의 남편이 찌른 칼로 죽은 아버지, 어머니는 포목점을 운영하다 불로 목숨을 잃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들려주는 그의 삶은 불운했고 비참했다. 소설 속 인물 모두가 그러하다. 종교에 빠진 남편과 아이를 낳지 못해 구박을 당한 누나, 부모를 잃고 언니와 함께 고생한 아내 명옥, 부도를 내고 사라진 남편을 둔 첫사랑 승희까지 말이다. 어떤 생이든 저마다의 환부로 채워진 삶이겠지만 작가는 마치 우리 생이 전부 불운과 불행으로 점철되었다고 말하려는 의도처럼 여겨진다.

 지나온 삶에 고통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작고 희미한 기쁨이 생의 전부를 감싸는 절망을 덮을 수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작가는 승호가 내린 선택에 자신 있게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겁기에.

 읽는 내내 묵직한 체증을 느낀다. 마치 부자의 여행길에 동승한 기분이다. 어쩌면 승호와 겸이는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견디고 살아내야 하는 삶이다. 부자의 여행은 시작되었고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다. 그 끝이 또 다른 삶이라는 걸 발견할 때까지. 소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길은 시작도 끝도 없다. 하나의 길은 세상의 모든 길과 연결되어 있기에.’ 227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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