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 민영화 실체' 다룬 문제작
'의료보험 민영화 실체' 다룬 문제작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1.27 07: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아내에 대하여>...소설속 이야기가 현실?

 [북데일리] <추천> 엉성한 머리카락과 어디서도 생기를 찾아볼 수 없는 여인이다. 저 여인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 <내 아내에 대하여>(2013.RHK)은 이처럼 표지부터 묘한 호기심을 불러온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떠올리면 이번에도 놀라운 충격을 안겨줄 게 분명하다.

 주인공 셰퍼드는 자신이 경영했던 회사를 판 돈으로 ‘두 번째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아프리카의 섬 ‘펨바’로 떠나 자유롭게 살고자 한 계획은 아내 글리니스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으로 무산된다. ‘중피종’은 일반적으로 완치가 가능한 암이 아니라 예후가 좋지 않았다. 셰퍼드가 다니는 직장에서 의료보험에 가입했지만 경제적으로 얼마나 도움을 받을지 알 수 없다.

 “의료보험조합에 연락해 글리니스가 그 환상의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보험을 적용해달라고 사정을 해야 했어. 그러려면 진짜 인간하고 통화를 해야 했고. 그런데 알지? 자동 응답 메뉴를 열 개는 통과해야 한다는 거. (…) 그러다 마침내 연결되면, 담당 부서가 아니라고 하지. 그럼 다시 돌아가야 하고.” (109쪽)

 셰퍼드는 아주 성실한 시민이자 책임감이 강한 사람으로 세금도 잘 냈고 아버지와 형제들을 돌봤다. 하지만 셰퍼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글리니스의 항암 치료를 위해 통장의 잔고는 줄어들었고 사장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했다. 처가 식구와 여동생은 오히려 짐이 될 뿐이다.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잭슨이 있었지만 그에게도 ‘FD’(가족성 자율신경 실조증)을 앓는 딸 플리카로 힘겨운 삶을 살기에 온전한 위로를 받을 수 없었다.

 셰퍼드의 삶은 아내 글리니스가 중심이다. 아내의 의지는 놀라웠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아내에게 셰퍼드는 통장의 잔고와 암의 진행 상태에 대해 솔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비밀로 할 수는 없었다. 임상실험에 참여하고 싶은 아내와 그걸 권하는 담당 의사에게 자신이 처한 현실을 말해야만 했다. 지각과 조퇴를 더이상 봐주지 않던 사장이 자신을 해고했고 가계는 파산했고 아내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다 잭슨처럼 자살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므로 셰퍼드가 가족과 아빠를 잃은 플리카와 그의 가족을 데리고 미국을 떠나 아프리카로 떠난 건 최후의 보루이자 최고의 선택으로 봐야 한다. 아내와 플리카가 그곳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았다. 죽음 역시 삶이므로.

 “딱히 그런 것 같지 않네. 이곳은 대기 자체가 어딘지 나른해. 그 어떤 것도 딱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안 들 것 같아.”

 “중요한 게 있긴 하지. 우린 1997년에 여기로 이주했어야 했다는 거.” (612~613쪽)

 600쪽이 넘는 방대한 이야기는 의료보험 현실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불치암에 걸린 글리니스와 FD를 앓고 있는 플리카를 통해 우리는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현실을 직시한다. 의료보험의 민영화가 가져온 결과다. 돈이 있어야만 좋은 시설을 갖춘 병원에서 원하는 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집을 원하는 삶이 아니라 병에 걸렸을 때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걸 확인한다. 국가와 정부가 책임을 왜 개인에게 전가하는지 알 수 없다. 소설 속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일상이 될 수 있기에 두렵다.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이유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