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경을 담은 숟가락의 재발견
공경을 담은 숟가락의 재발견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1.27 0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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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 명문장] 김선우의 <김선우의 사물들>중에서

[북데일리] <김선우의 사물들>(2012.단비)은 제목 그대로 사물(事物)들의 이야기다. 우리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20여개의 물건들에 대해 김선우 시인이 부여한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에세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본다는 것, 하나의 사물에 담긴 애정을 만날 수 있다.

‘숟가락은 둥글다. 젓가락이나 포크는 날카롭다. 숟가락은 거두어들여 섬긴다. 젓가락이나 포크는 찍거나 선별한다. 숟가락은 손 전체에 해당한다. 숟가락을 가지런히 모두 붙이고 손바닥, 손목까지 전체를 사용하는 통합 구조물이다. 젓가락이나 포크는 손가락이 기능성이 집중적으로 부각된, 부분이 확장된 구조물이다. 서양에서보다 동양에서 숟가락이 더 오래전부터 더 일상적으로 사용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숟가락은 뜬다. 젓가락은 집는다. 숟가락으로는 물을 떠먹을 수 있다. 젓가락으로는 물을 집을 수 없다. 뜬다는 것은 모신다는 것이다. 양손 혹은 한 손을 둥글게 오므려 샘물이나 약수를 떠 마실 때, 그 행위는 단순히 ‘먹기/마시기’를 넘어선다. 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켤 때와 행위의 결과는 같다 하더라도 과정은 다르다. 찰나일지라도 그 순간에는 어떤 경건함이 스며 있다.

 무엇인가 숟가락으로 떠서 입속에 넣을 때 우리는 반드시 고개를 숙이게 된다. 무엇인가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속에 넣을 때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 할 필요는 없다. 손을 오므려 약수를 떠먹을 때처럼, 숟가락은 공경을 내포한다.’ <‘숟가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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