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부호로 삶을 표현하기
문장부호로 삶을 표현하기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1.17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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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명문장] 이정록의 『시인이 서랍』중에서

 [북데일리]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그것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진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생각의 표현들에 감탄한다. 다음 소개하는 이정록의 <시인이 서랍>(한겨레출판. 2012년 4월)의 한 부분이 그렇다. 문장부호만으로 생을 말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

 ‘이 세상에 태어남을 문장부호로 표시하면 여는 괄호 ( 이다. 내가 태어난 때를 요약하면, 이정록(1964~ 이다. 순서대로라면 이정록이란 이름보다 ( 가 앞서야 한다. 단순한 이 ( 는 허공에 걸린 초등달이다. 내가 나에게 힘을 실어주는 한, 세상의 젖을 빨며 차오를 살아 있는 달이다.

 세상의 모든 출생은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간에 어둠을 배경으로 선연하게 빛을 채워가는 초승달인 것이다. 불운의 먹구름이 초승달을 가린 뒤 영원히 우리의 눈에서 사라져버린다 해도, 세상의 모든 태어남은 어디쯤에서 보름달을 향해 마음을 키워가고 있으리라.

 또한 ( 는 작은 상처 같기도 하다. 작은 상처로 만든 문인 듯도 싶다. ( 를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생들이 저마다 상처를 열고 어딘가로 가는 모습이 보인다. 밤하늘에 작은 달의 싹을 걸어두고, 자신의 빛을 따라 땀 흘리며 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생애들을 압축하면 물결표 ~ 이다. 얼마나 절묘한가! 고해의 밤바다다 여기에 있다. 세상 그 누구도 붙임표의 연속 ----- ­처럼 살아갈 수는 없다. 어떻게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할 수 있겠는가. 또한 줄표 ―처럼 아무런 기복 없이 마감할 수도 없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이다. 내리막에서 괄호를 닫는 것이 모든 생의 일반적인 특징이라 할지라도 ~ 의 끝은 오르막의 극치로 덩굴손이 치솟고 있다. 얼마나 생기에 찬 마감인가. 모든 생애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아름다운 물결표!’ (180, 181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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