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대중에게 봄 벚꽃으로 잘 알려진 서산 개심사를 시작으로 하동 쌍계사, 춘천 청평사, 고창 선운사뿐만 아니라 쉽게 접할 수 없는 금강산 보덕암, 만폭동의 사암까지 소개한다. 욕심을 내려놓고 오직 불심을 위한 기도만이 가득했을 곳, 글과 사진으로 인적이 닿지 않는 깊은 산속에 지어진 옛절과 마주하니 겸허하고 정갈해지는 듯하다. 건축양식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정말 대단한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개하는 절마다 어떤 방법으로 건축되었는지 설명한다. 청양의 장곡사는 특히 흥미롭다. 저자의 글에 의하면 바닥은 신라, 몸통은 고려, 지붕은 조선말의 건물이라고 한다. 하여 장곡사의 두 대웅전의 지붕을 올린 방식과 내부도 차이가 난다. 건축을 공부한다면 직접 보고 확인한다면 좋을 것이다.
‘장곡사의 건물들은 바로 사찰의 연대기를 기록한 입체적 사적기이며, 시대와 가람의 변화를 구조와 형태로 설명하고 있는 건축적 박물관이다.’ 87쪽
동백꽃과 상사화로 유명한 선운사에 대해서는 이렇게 언급한다. 임진왜란 후 다시 재건할 당시 정형적인 부재를 구할 수 없어 기존 건물에 썼던 기둥을 재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격식대로 만들어진 부분이 없다 해서 부처님을 모시는 마음이 다르겠는가.
‘장애가 없으면 무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제약이 없으면 자유도 없고 독창성도 없다. 선운사와 참당암의 건물들은 숱한 장애 속에서 지어졌지만 거리낌 없는 호쾌한 건축을 이루었다. 위대한 건축은 장애를 극복하고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선운사와 참당암의 거칠고 자유로운 건축들은 그래서 위대하다. ’ 113쪽
기도를 위해 옛절을 찾지만 건축에 대해 자세히 관찰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21곳의 옛절이 모두 빼어나지만 돌에 동물 형상과 창살을 장식한 연꽃은 정말 훌륭하다. 전쟁과 화재로 사라져 본연의 모습으로 복원하지 못함에 나 같은 이도 애통한 마음이 드니 저자와 스님은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반복된 일상과 밥벌이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면 고적한 옛절을 찾는 건 어떨까? 풍경과 사색, 두 가지 기쁨을 만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