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미묘한 심리 소설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 소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1.09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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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최의 장편소설 <요주의 인물>

 [북데일리] ‘리(Lee)는 헨들리가 폭탄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그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1쪽)

 수잔 최의 장편소설 <요주의 인물>(예담. 2013)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고 리가 범인이라고 단정 짓는 이도 있을 것이다. 소설은 예상한 대로 폭탄 테러가 발생한 후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범인을 찾는 추리소설이라 말할 수는 없다. 한 인간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를 보여주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 리는 수학자로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노년의 교수로 젊은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수는 아니다. 바로 옆 연구실을 사용하는 헨들리는 학계로부터 촉망받는 교수다. 그에게 폭탄이 배달되었고 결국 헨들리는 사망한다.

 리는 두 번 이혼을 했고, 딸 에밀리와는 소식이 끊긴지 오래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는 견고하다고 자부하며 살았다. 동양인으로 이민자지만 시민권을 획득했고 종신직 교수로 생활로 나쁘지 않다. 더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과 이웃과 교류하지 않는 것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진로상담을 신청하는 학생이 없다는 것, 헨들리에게 패배했다는 것이 자존심 상할 뿐이다. 그런 헨들리의 사망은 리의 삶을 뒤흔든다. 헨들리의 사망으로 인터뷰를 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오랜 시간 연락이 끊긴 동료 게이더가 연락을 해온다. 그 편지로 인해 리는 말 그대로 요주의 인물이 되고 만다.

 소설은 폭탄 사건이 벌어진 후 리의 일상과 과거 리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과거 리가 사랑했던 아일린과 그의 전 남편인 게이더와의 불편한 관계를 시작으로 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들려준다. 리는 아일린이 게이더와 이혼하면서 아들 존의 양육권까지 포기하며 얼마나 고통의 날들을 보냈는지 알려 하지 않았다. 때문에 30년이 지난 지금 게이더의 편지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사건 해결을 위해 나타난 특수요원에게 게이더의 편지에 대해 거짓말을 한 건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본능이었다. 그 편지로 인해 리는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고, 언론은 그가 마치 범인과 공범인 듯 몰아세운다. 그가 이웃과 어울리지 못했던 일, 종종 헨들리와 마찰을 빚었던 일, 학교에서의 그의 사소한 행동들이 모두 의심의 대상에 놓인다. 그러나 리는 특수요원 짐의 말대로 요주의 인물이지 용의자가 아니었다. 

 수잔 최는 리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숱한 감정의 변화를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다. 범인에 대한 궁금증과 누구도 알 수 없는 인간의 심리를 멋지게 묘사한 소설이다. 사랑, 미움, 연민, 동정, 증오, 등 우리 삶을 가득 채운 감정들을 말이다.

 ‘사랑은 상실에 항복할 수는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칠 줄 모르는 저항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아일린을 잃기 전에는, 리에 대한 아일린의 가차 없는 인식이 외로움의 해독제라는 것을 몰랐다. 그에게 딱 한 번만 주어졌던 특권이라는 것을 몰랐다. 아일린이 죽은 이후에 그는 점점 그때는 참아내기 어려웠던 결혼 생활의 면면들을 점점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574쪽

 리를 바라보는 이웃의 시선, 그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600쪽이 넘는 긴 호흡은 다소 지루하기도 하다. 하지만 한 인간의 생을 담기에 부족하다는 걸 알기에 수잔 최의 놀라운 통찰력에 빠져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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