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편린, 감정의 파동
일상의 편린, 감정의 파동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1.06 0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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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희의 <관능적인 삶>

[북데일리] 글이 매력적인 건 나를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예쁘다’ 란 문장 속에 나는 정말 예쁠 수도 있고, 나는 예뻐질 수도 있으며, 나는 예쁘지 않을 수도 있다. 글은 이토록 매혹적이다. 때문에 누구나 자신만의 글을 욕망한다. 이서희의 <관능적인 삶>(그책. 2013)은 그 욕망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엮은 책은 일상의 편린이며, 감정의 파동들이다. 제목처럼 감각적이며 관능적인 글이다. 고요한 듯 강한 목소리는 솔직하고 당당하다. 능동적인 삶이다. 누구나 흠모하는 풍경이 아닌 참여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국이라는 공간을 벗어난 것이 저자가 지닌 가장 큰 힘인지도 모른다. 물론 한국에서 산다고 해도 그녀의 사고와 감성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향한 시선은 분명 다를 것이다.

 저자의 글을 매우 탐미적이다. 사고의 확장도 마찬가지다. 지극히 주관적인 연애와 성에 대해 과감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농밀하면서도 야하거나 과하지 않다. 적절한 수위를 잘 지키는 글이다. 그래서 부러운 것이다. 관조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이성과 잘 조화를 이룬 감성의 힘이 맞을지도 모른다.

 ‘당신을 위해 달리는 속도를 늦출 수는 없겠지만, 달리는 행위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사랑이 끝나는 순간은 당신이 나를 원하는 만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가 비로소 마감을 알리는 신호를 보낼 때에 찾아왔다. 그것은 비장한 마무리일 때도 있었지만, 바람이 대기에 스며들 듯 아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기도 했다. 남김없이 사랑한 뒤의 결말은 대체로 편안했다.’ 45쪽

 지난 연애와 사랑이 모두 추억이 되거나 아름다운 건 아니다. 현재에 있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저자가 들려주는 사랑의 주체는 언제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그녀의 선택이었고, 그녀의 결정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연애가 끝나도 미련이라는 마음의 방을 만들지 않고 나는 행복해야 하니까.

 중요한 건 사랑만이 아니다. 삶이 그러하다. 이국에서의 삶이 풍경처럼 아름답기만 하겠는가. 불행은 누구에게나 닥친다. 다만 어떻게 받아들이고 포옹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나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그녀 역시 때로 절망하고 때로 아파할 것이다. 그러나 행복과 불행이 단 한 글자의 조합으로 극과 극의 세상을 보여주듯 사고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녀는 알고 있다. 저자가 바라본 삶의 풍경, 그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다.

 ‘삶이 나 혹은 가족을 위한 것으로만 고착되는 순간, 견딜 수 없는 불행의 씨앗은 자리에 와 박힌다. 우리의 생은 방어적 행복으로 점철될 것이며, 그것은 언제나 불안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주 개인적인 이유다. 우리는 혼자서는 결코 생의 불행도 행복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다. 영역을 넓히고 공감하고 생의 지평선을 넓힐 때에야 비로소 그것에서 해방될 수 있다.’ 240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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