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늪에 빠진 인간 실체
욕망의 늪에 빠진 인간 실체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12.22 2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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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의 <하품은 맛있다>

[북데일리] 부정하고 싶은 현실 앞에서 우리는 이 모든 게 꿈이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현실이 아닌 꿈이라면 원하는 대로 삶을 조종할 수 있을까? 그런 꿈이라면 꾸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강지영의 <하품은 맛있다>(자음과모음. 2013) 속 이경도 그랬을 것이다. 이경은 작은 키에 못생긴 외모 때문에 평범한 아르바이트 대신 청소업체에 나간다. 일반 사무실이나 가정집 청소가 아닌 죽음의 흔적을 치우고 유품을 정리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죽은 그 자리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불행은 물과 같아서 언제나 낮은 곳에 고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불치병 환자는 죽기 마련이다. 드물게 가난뱅이가 부자가 되거나 불치병 환자가 완쾌하는 일도 있지만, 아무도 그걸 당연한 순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또처럼 희박한 확률의 행운은 행운이라 하지 않고 기적이라 부른다. 내게 지금보다 더 나쁜 일이란 없다.’ 15쪽

 이경이 꿈을 통해 다른 이의 삶을 경험하게 된 건 죽은 다운의 유품을 정리하면서다. 이경은 꿈속에서 5개월 전 다운의 일상을 경험한다. 마찬가지로 다운은 꿈에서 5개월의 후의 이경이 된다. 다운은 이경과는 반대로 누구나 반할 외모로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명문대에 다닌다.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았던 이경과 다운, 둘은 운명의 끈으로 이어졌던 것일까?

 현실에서 이경은 다운의 원룸에서 발견한 유품에서 살핀다. 그 과정에서 이경은 청소업체 남 사장에게 모든 걸 털어놓는다. 전직 경찰이었던 남 사장은 이경을 믿는다며 도움을 자청한다. 하지만 꿈을 통해 이경의 미래를 경험한 다운은 이경이 하는 일을 막는다. 놀랍게도 죽은 여대생은 다운이 아니었다. 가수가 되기 위해 집을 나온 다운은 친구 가을의 원룸에서 지내고 있었다. 돌발적 사고로 가을이 죽자 다은의 엄마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남 사장을 불러 사건을 은폐한 것이다.

 이경은 모든 걸 알게 된다.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인 다운의 삶은 엄마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졌고, 남 사장은 은밀한 죽음을 거래로 돈을 벌고 있었다. 이경은 그들에게 걸림돌이었다. 다운도 이경이 사라지기를 원했다. 죽음의 위기에서 이경을 구한 건 내림굿을 받은 이경의 친구 유나였다. 이경은 다운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경은 다운의 삶을 살기로 한다. 다운으로 살기 위해 그녀는 뭐든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살인이라 할지라도.

 “나는 변태했어요. 이젠 박이경도 단아름다운도 아니에요. 나비 날개를 달고 밤하늘을 나는 기괴한 괴물이 돼버렸어요. 아저씬 평생토록 이 순간을 곱씹게 될 거예요. 지독한 악몽으로 어제오늘 겪은 일들을 수없이 반복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불평하지 않기로 해요. 생존도 우리에겐 과분한 기적이니까요.” 316쪽

 작가는 꿈을 통해 타인의 시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기발한 설정으로 욕망의 늪에 빠진 인간의 실체를 보여준다. 소설은 이경과 다운의 삶을 번갈아 가며 보여주지만 어느 순간 이경과 다운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결국 욕망으로 가득한 삶과 죽음만 남을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욕망의 끈을 놓지 못하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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