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에게서 온 메일
죽은 자에게서 온 메일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12.18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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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데드맨>

 [북데일리] 한 남자가 죽었다. 아니, 그는 살려졌다. 살아났다가 아니라 살려졌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머리만 나일뿐 몸과 팔과 다리는 모두 나의 것이 아니다. 과연 이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위나 간 이식이 아닌 머리와 몸 일부를 이식하는 일이 현재 의학에서 가능한 일이라면 말이다.

 ‘0월 0일

 지금의 나는 나일 것이다. 하지만 어제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아니, 날짜를 거슬러 올라가며 읽는 이 일기에 따르면 어제도, 그 전에도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내가 나로 돌아온 것은 약 1년 만의 일이다. 내일의 나는 과연 나일까? 아마 아니리라. 지금 이 시간을 놓치면 나는 영원히 내가 아니게 되고 말지도 모른다. 그런 예감이 든다. 아아, 이 지독한 오한. 이 끔찍한 전율. 이 무시무시한 공포! 그래서 나는 내가 나인 상태로 있는 동안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일들을 모두 이 일기에 적어두기로 한다. 내가 누구인가를. 내가 알게 된 진실을. 내게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나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놈이 누구인지. 그리고 용서할 수 없는 그놈이 저지른 짐승만도 못한 짓을.’ (7,8쪽)

 <데드맨>(작가정신. 2013)은 아주 기묘하게 시작한다. 책은 이처럼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때문에 살인은 놀랍지 않다. 정교하게 도려낸 머리를 가지고 사라진 범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도대체 왜 머리가 필요했던 것일까. 두 번째 살인이 발생한다. 지난 사건과 마찬가지로 깨끗하게 잘린 몸통만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팔과 다리가 사라진 네 명의 시체가 발생한다. 이토록 잔인한 방법을 선택한 범인이라니, 소름이 돋는다. 단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소설은 일기장의 주인공 화자의 이야기와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형사들의 이야기가 교차로 이어진다. 화자는 의식은 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가 머리와 몸만 있는 상태며 곧 팔과 다리를 이식해주겠다고 전한다. ‘가미무라 슌’이라는 이름도 지어준다. 얼마 후 정말 팔과 다리가 생겼고 재활 훈련에 돌입한다. 병원에서 만난 소녀 다니야마 시스와 친해진다. 슌은 시스가 보낸 메일을 통해 가부라기가 맡은 사건(여섯 명의 피해자와 과거 이 병원에 있었던 의사 세 명의 성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슌은 데드맨이라는 이름으로 가부라기에게 자신의 상황을 메일로 보낸다. 가부라기 팀은 만약을 대비해 메일을 조사한다. 놀랍게도 40여 년 전 피해자들의 할아버지 세대에 의료사고가 있었다.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 뇌의 전두엽 수술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재판이었다. 당시 가해자인 병원과 의사들은 무죄를 받았고 환자만 고통의 삶을 지속해야 했던 것이다.

 데뷔작으로 제32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한 작가는 엽기적인 살인 사건으로 관심을 집중시킨 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의학 발전이라는 이유로 무분별한 의료 행위를 일삼는 이들을 고발한다. 죽은 자가 편지를 보낸다는 기발한 발상으로 시작된 추리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도쿄 도의 한 세대당 평균 인구는 겨우 두 명. 이웃에 누가 사는지 무관심. 쇼핑은 온라인 쇼핑을 이용. 친구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인터넷 세상 속의 사람들. 인간관계는 점점 옅어지고 짙어져가는 사이버 세상뿐이다.’ 148쪽

 부정을 알고도 나서지 않는 세상, 권력으로 법을 악용하고 욕망을 채우는 인간들, 그 모든 게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괜찮다고 무관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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