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그 날 밤 말없이...
문재인, 그 날 밤 말없이...
  • 정지은 기자
  • 승인 2013.12.10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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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하고 있을 수많은 이들을 떠올리며

[북데일리리] 지난 대선의 기록과 평가, 소회를 담은 문재인의  <1219 끝이 시작이다>(바다출판사. 2013)이 출간됐다. 책 중에, '그 날밤'을 담은 내용을 가감없이 소개한다.

<포스트잇>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저의 패배가 비로소 실감 나게 다가왔습니다. 저의 집 앞에서 촛불을 켜고 승리를 기원하던 시민들과 동네 주민들이 제 모습을 보고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모두들 말이 없는 가운데 곳곳에서 흐느낌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선을 기원하며 아파트 주변에 달아 놓았을 노란 풍선과 리본들, 그리고 꽃다발이 겨울바람 속에서 위로의 말을 대신했습니다. 그저 기도하는 마음으로 추위 속에서 고생했을 사람들의 수고가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소망을 이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슬픔을 안겨 줬다는 사실이 아프게 와 닿았습니다.

당사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열심히 뛰었던 의원들, 당직자들, 특히 자원 봉사자들이 저를 포옹하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 냈습니다.

밤 11시 55분 기자들 앞에 섰습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의 실패이지 새 정치를 바라는 모든 분들의 실패가 아닙니다. 박근혜 후보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박근혜 당선인께서 국민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나라를 잘 이끌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국민들께서도 이제 박 당선인을 많이 성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힘든 마지막 결정이었습니다.

아주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단둘이 마주 앉았습니다.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할 말도 별로 없었고, 또 말이 필요 없는 밤이었습니다.

그 잠, 저 자신의 쓰라림보다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곳곳에서 통음(痛飮)하며 아파하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먹먹했습니다. 그들의 아픔이, 남은 밤 동안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다음 날, 선대위 3개 캠프별로 해단식이 열렸습니다. 일일이 찾아가서, 감사와 사과와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나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습니까.

패배한 뒤에 치러야 하는 해단식이라는 건 참 곤혹스러웠습니다. 고통스럽고 어색했습니다. 특히 시민캠프에 함께해 주신 분들에겐 더 그랬습니다.

사실 아무 의무가 없는데도 고생한 분들이었습니다. 민주당 사람들이야 같은 당원 동지들이니, 당연히 고생이거니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민캠프에 참여해 주신 분들은 당연히 해야 할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정권 교체를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던 일까지 다 팽개치고 희생을 기꺼이 감수했던 겁니다.

그들이야말로 순수한 마음으로 자기 돈 써 가며 함께 세상을 바꿔 보려고 노력했던 분들이었습니다. 각별히 고맙고 각별히 미안했습니다.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받은 사랑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 인사 말고는 더 자라 감사하고 더 잘 위로할 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일이지만, 대선 평가 과정에서도 그들의 헌신과 기여와 그들에 대한 고마움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분들을 아프게 만들고 허탈감을 주는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참 면목 없습니다. 패배 못지않게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54`56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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