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섬 ‘짐승인간’ 이야기 소설화
외딴섬 ‘짐승인간’ 이야기 소설화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12.03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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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가르드의 <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북데일리] 괴물인지 사람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표지의 <흰둥이 야만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2013. 은행나무)는 2012년 공쿠르 신인상 수상작으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다. 19세기 중반 선원으로 일하는 열여덟 소년 나르시스는 홀로 외딴 섬에 남겨진다. 물 부족으로 낯선 섬에 정박했던 배가 나르시스를 잊은 채 떠난 것이다.

 18년이 지난 후 그를 발견한 이들에게 나르시는 말 그대로 흰둥이 야만인에 불과했다. 모국어인 프랑스어는커녕 언어 자체를 잊었고, 손으로 음식을 먹고, 몸에는 상처와 알 수 없는 문신이 가득했다. 지리학자 옥타브는 그를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지리학회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한다. 소설은 나르시스의 이야기와 보고서를 교차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문명(옥타브)과 야만(나르시스)의 세계가 함께 펼쳐지는 것이다.

 옥타브의 가르침으로 나르시스는 사람다운 모습으로 변화한다. 나르시스는 아이처럼 말을 배우고, 도구를 익히고, 상황을 인식한다.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하거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저 지금 문명의 세계에 놓인 현실을 부정하지 못하는 듯하다. 옥타브를 비롯한 지리학회가 바랐던 섬에서 보낸 삶은 찾을 수 없었다.

 ‘나르시스는 변하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는 우리와 가까워지는 대신, 오스트레일리아의 심오한 자연과는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규칙을 접하는 즉시 그에 적응하고 있지요. 지금 입고 있는 바지와 입에 올리는 말들, 나와 만들어가는 인간관계 모두가 그 자신을 우리에게 가까이 데려오고 있는 반면, 제가 그에게서 애당초 발견하고자 한 무엇은 자꾸만 속으로 감추고 있습니다.’ 129쪽

 반면 나르시스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낯선 세계를 탐험하는 듯 기묘한 설렘을 준다. 죽음의 공포에서 원주민과 만난 그가 느꼈을 감정은 공포이면서 안도였다. 외부와의 접촉을 기대했지만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옥타브와 나르시스의 만남처럼 말이다. 섬을 이동하면서 동물과 기이한 열매를 먹는 그들은 그에게 ‘암글로’ 란 이름을 붙여준다. 그들에겐 서열이 있었고, 나르시스는 아이들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나르시스는 미개한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곧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것이라고.

 ‘지금까지 부족이 생활하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찔찔 짜는 야만인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어쩜 이렇게도 공통점이 없는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저들과는 그 어떤 관계도 맺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홀로 고독함으로써 사색과 고뇌, 계획과 추억에 심취할지니, 차라리 혼자여서 즐거울 법도 했다.’ 169쪽

 놀랍게도 실화를 재구성한 소설은 무척 흥미롭다. 한 편의 탐험 영화를 보는 듯 빠져든다. 섬에서의 나르시스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더불어 옥타브와 함께 생활하면서 나르시스 문명의 세계로 완전하게 복귀할 수 있을까. 나르시스는 존재를 확인했고 고향에서 부모와 형제를 만났고 직업을 가졌지만 그는 사라졌다.

 나르시스가 아닌 태양이라는 뜻의 ‘암글로’ 로 살아온 시간, 그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했을 것이다. 언어나 기호가 아닌 눈빛으로 몸으로 기억하고 배우고 소통하며 하나가 된 삶으로 충분했다. 어디에 속하든 삶은 다르지 않을 터.

 ‘불그스레한 모닥불 불빛 속에서 아이와 젊은이는 서로 말없이 손을 잡고 있었다. 아마도 평온한 마음으로 둘은 조용히 오랜 시간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어스름 속에 나르시스의 손을 맞잡은 까무잡잡한 아이의 손.’ 304쪽

 우리는 일반적으로 야만과 문명이 충동했을 때, 야만은 문명에 흡수된다고 여긴다. 나르시스에게 문명을 강요했어야 옳았을까? 야만과 문명의 두 세계에서 문명만이 선택받을 수 있다는 건 기만인지도 모른다. 그 세계를 경험하지 않은 자는 알 수 없으므로.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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