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사무치게 하는 전통 춤꾼
우리를 사무치게 하는 전통 춤꾼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11.22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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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옥섭의 <노름마치>

 

[북데일리] <추천> ‘걷는 건 두렵지만 춤을 추는 것은 두렵지 않다. 몸속에 소리와 음악이 모두 들어 있어 선율의 흐름에 다라 그때그때 춤이 달라진다. 전통이란 이름 속에서 순간순간 새것이 돋아난다. 이런 순간은 맛보는 순간 중독이다. 결국 또 들여다보고픈 과욕이 극성스런 길을 가게 한다. 정녕 보고픔도 극심한 허기의 일종인 것이다.’ 24쪽

 보존하고 지키려고 할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특히 예술과 전통이 그렇다. 그래서 사라지는 소리와 춤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전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 <노름마치 : 진옥섭의 사무치다>(문학동네. 2013)가 특별하다.

 저자는 이 책을 보도자료라도 말한다. 그 속엔 발로 뛰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낀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뜻이리라. 책에서 만나는 춤꾼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녀, 무당, 광대, 소리꾼 이라 불리는 분들이다. 예기(藝技), 남무(男舞), 득음(得音), 유랑(流浪), 강신(降神), 풍류(風流) 로 나누어 각 분야에 세 명씩 모두 18분의 삶을 들려준다. 하지만 ‘공옥진’을 제외하면 대부분 낯선 이름이 많다. 그만큼 전통문화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인가.

 공통적으로 그들이 춤의 세계로 들어간 건 가난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선택했거나 운명적으로 춤에 끌린 경우였다. 그러나 춤은 그들에게 운명이었다. 화려하게 보이는 춤 뒤에는 고통이 내재되어 있었다. 춤으로 가족을 살렸고, 춤 때문에 버림받기도 했고, 소리 때문에 살아 남기도 했다. 이제는 평균 연령이 80세가 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고, 기녀와 무당이었다는 이유로 자손들에게 누가 될까 숨기고 있었지만 끓어오르는 춤에 대한 열정은 감출 수 없었다.

 전통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닌 ‘우리 것’ 이라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부활되고 계승되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 우리는 제대로 기억하고 배워야 할 것이다. 집안 내력을 따라 광대의 딸이라 불렸던 심화영 할머니의 말씀은 춤뿐 아니라 내면이 아닌 보이는 것들에만 치중하는 우리네 삶에 대한 충고 같아 괜히 뜨끔하다.

 ‘장단을 치다가 벌떡 일어나 북걸이를 잡고 버섯발을 들어올리는데, 큰 구경이라도 한 것처럼 눈에 새로웠다. “맹글어 추지 말어, 호흡보다 몸이 놀아야 혀.” 요사이 조형에만 신경쓰는 전통춤을 향한 말이었다. 무척 자연스러운 몸놀림이었다. 호흡이라는 말보다 숨이란 말로, 몸 가는 대로 추는 춤이었다.’ (「중고제의 마지막 소리, 심화영」 중에서 96쪽)

 지키려 한 삶도 평탄하지 않았다. 유랑광대로 살아온 김운태 님은 포장극장이 아닌 두레극장을 개관했지만 경영에 실패했다. 풍물을 배우고 소고춤만을 추었으니 경영의 실패로 부도는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구치소 생활을 하고 나온 그에게 춤은 유일한 것이었다. 현역 춤꾼으로 그의 황홀한 춤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할 일이다.

 ‘규칙과 불규칙 속을 노니는 게 그의 삶이자 춤이다. 대개의 춤꾼이 발꿈치 가운데 중심을 둔다면 그는 모든 감각을 엄지발가락 근처에 싣는다. 무대 위에서 페달을 밟듯, 이미 뒤꿈치를 들고 어디론가 이동할 태세로 춤을 추는 것이다. 안락한 안보다 투박한 밖을 지향한 유목하는 인간, 홀로 노마드인 것이다.’ (「포장극장의 소년 신동, 김운태」 중에서 258쪽)

 저자는 우리가 지키고 즐겨야 할 전통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더불어 그것에 취하고 즐기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가 보여준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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