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첫 사랑에게 쓴 편지
시인들이 첫 사랑에게 쓴 편지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11.14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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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손편지를 쓰고 싶게 만드는...

 [북데일리] ‘당신과 나의 인연을 첫사랑이라 불러도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사랑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각자 혼자만의 사랑을 완성하느라 분주했던 걸까요?’ (102쪽, 조용미의 편지 중에서)

 스무 명의 시인이 쓴 단 한 사람만을 위한 편지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곰. 2013)는 아련한 첫사랑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한 통의 편지를 연상시키는 표지만으로도 설레는 책이다. 천양희, 이근화, 김경주, 이민하, 박정대, 김영승, 강정, 김언, 이재훈, 이제니, 박연준, 유희경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 20인이 첫사랑에게 쓴 편지를 모은 에세이 집이다. 그러니까 스무 통의 편지를 만날 수 있다. 더불어 스무 명의 손글씨를 직접 볼 수도 있다.

 ‘사랑을 한다는 건 뭘까, 그것 역시 우리가 알 수 없는 아득한 그 무엇을 서러움 없이 툭, 하고 만졌다가 그리워하고 또 서러워졌다가 후회도 하고 안도도 하며 그렇게 열렬히 자기 마음의 불꽃을 태우는 것’ (40쪽, 박정대의 편지 중에서)

 애써 담담한 척 써 내려간 시인의 편지를 읽으면서 글에 숨어 있는 절절한 그리움을 발견하고 그만 멈칫한다. 시인이 아니라도 이런 편지를 쓸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그들의 사랑은 우리의 그것과 달랐던 것일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토록 곱고 고운 결의 편지 속 주인공을 상상하고 부러워한다. 온통 한 사람만으로 채워졌을 그 시간을 흠모한다. 그 사랑이 어떤 형태로 변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그 사랑이 주는 감동과 위안을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으로 충만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누군가를 사랑(그래요 사랑)한다는 일이 나이와 무슨 상관이겠어요. 웃자라거나 덜 자랄 수 없는 그런 것 아니겠어요. 어찌 보면, 그때 그 사랑이, 사랑이라는 표현 한마디 없이도 얼마나 진심일 수 있었는지요. 바라는 것 하나 없이, 그대로. 소유와 같은 욕망의 감정도 아니었으니, 타인이 단 하나의 특별한 존재로 변하는 그 과정 전체를 고스란히 겪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30쪽, 유희경의 편지 중에서)

 어떤 편지는 함께 여행을 떠나고 어떤 편지는 촌스럽고 유치했던 학창시절을 불러온다. 편지를 읽는 동안, 나는 그였고 그녀였다. 소설처럼, 시처럼 아픈 사랑의 편지도 있다. 보내지 못하는 편지라서, 온전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었고 여태껏 말하지 못한 마음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꺼내고 싶지 않은 사진첩 속 깊숙하게 숨겨둔 사진처럼 말이다.

 시인이 쓴 시와 닮은 편지를 읽는 즐거움을 안겨준 책이다. 읽는 동안 그들의 시집을 꺼내게 만든다. 스무 명의 편지는 찬연하다. 특별하게 존재했던 한 사람에게 쓴 편지였지만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 거하는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편지 그 자체가 산문시였고 슬쩍 훔치고 싶은 편지다. 시인의 육필 편지가 함께 있다.

 마주 보는 사랑 안에 있는 이에게, 설령 사랑 밖에 있는 이에게도 이 스무 통의 편지를 권한다. 이 책으로 켜켜이 쌓아 단단해진 사랑의 고백을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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