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처럼 뱅... 청춘의 초상
'팽이'처럼 뱅... 청춘의 초상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10.28 0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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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의 첫 소설집 <팽이>

[북데일리] <추천> 죽을 만큼 노력해도 한 발짝 앞으로 나가기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에게 도움의 손을 뻗어야 할까. 이 같은 슬픔을 최진영의 소설집 『팽이』(2013. 창비)에서 만난다. 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책에 수록된 10편의 소설은 평범한 일상의 편린처럼 보인다. 평범이라는 말을 써도 좋다면 말이다. 표제작 <팽이>의 화자 재이는 단칸 방에서 오빠와 산다. 처음엔 엄마도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는 엄마의 삶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다. 재이는 좀 느린 편이다. 열살이 될 때까지 글자를 다 읽지 못 해서 오빠에게 한글을 배우고 기다리고 책임지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혼자 사는 법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오빠도 자신의 세상으로 떠나고 어른이 되어서도 혼자 살아간다. 자신이 도는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팽이처럼 말이다. 누군가 옮겨주지 않으면 멈추고 마는 삶인 것이다.

 ‘우리가 허락된 크기만큼 자라는 동안 무너지지도 부서지지도 않고, 우리의 숨과 비밀과 유년을 덧바르며 거듭 견고해진 방. 까만 그곳에서, 야광 팽이가 팽팽 돌고 있었다. 가장 빨리 돌 때의 팽이는 거꾸로 도는 것도 같았고, 꼿꼿이 서서 움직이지 않는 것도 같았다. 나는 거꾸로 돌거나 가만히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를 팽이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만히 지켜봤다.’ (285~286쪽, 팽이 중에서)

 <팽이> 속 재이처럼 혼자서야 하는 삶이 당연한 듯 보인다. 하지만 자립은 쉽지 않다. 그러니 꿈을 꾼다는 건 그 자체로 사치라 할 수 있다. 함께 사는 코끼리 앨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랑, 믿음, 꿈에 대해 말하는 <앨리> 속 화자도 마찬가지다. 그가 하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화자가 키우는 코끼리 앨리를 누구에게도 소개할 수 없다. 사랑한다고 믿는 애인은 결혼이란 현실적 문제 앞에 이별로 변하고, 영화를 만들고 싶은 꿈에 대해 형은 정신 차리라 말한다.

 ‘불행을 피하겠다는 게 아니다. 진짜로 불행해지는 그때 그 순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되지 않나. 하지만 언제 올지도 모를 불행 때문에 현재를 망치고 싶진 않다. 형이 정말 어른이라면, 나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가족이라면, 내게 미리 불행을 주입하는 대신 내가 진짜 불행해지는 바로 그날 나를 위로하고 쓰다듬어줘야 한다. 위로와 걱정은 일이 일어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134쪽, 엘리 중에서)

 정확한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채 아버지가 준 장소를 찾지 못하는 이야기 <어디쯤>, 엄마가 죽고 남겨진 빌라에서 혼자 살아가는 <월드빌 401호>속 종철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과 단절한 상황에서 불안하고 두려운 삶을 살아간다. 그런가 하면 <창>의 주인공은 비정규직 여성으로 직장에서 왕따를 당한다. 동료들은 모두 그녀를 험담하고 상사는 무시한다. 무슨 이유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사회는 그녀를 더욱 외롭게 만드는 존재인 것이다.

 모두가 적이 될 수 있는 사회, 불안과 불신이 팽배한 세상, 사랑한다고 믿는 이들조차 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구도 불행하고자 애쓰지 않는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행복해지려는 욕망을 꿈꾸지 않는다. 다만, 불행이라는 늪을 건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진영의 소설 속 인물들이 그렇듯 여전히 불행의 늪에 있다. 해답이 아닌 문제만 제시한 그녀의 소설이 와 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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