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처럼 얽힌 욕망들
거미줄처럼 얽힌 욕망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10.23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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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영화를 떠올리는 추리소설 『죽음의 한가운데』

 

[북데일리] ‘내가 해야 할 일은 살인자를 잡았고 무고한 사람이 풀려나게 했다는 걸 스스로에게 일깨워 주는 것이다. 인생이란 게임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법이다. 질 때마다 자책할 순 없는 법이지.’ 225쪽

 우리는 잔인함에 익숙해졌다. 잔인무도한 사건에도 놀라지 않고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상실한 이들이 활개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소설을 통해 만나는 세상의 세태에도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어느 시대든 부정부패가 존재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렌스 블록의 <죽음의 한가운데>(황금가지. 2013)에 등장하는 경찰, 검사, 정보원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소설의 주인공 매튜 스커더는 경찰 출신의 탐정이다. 사건 현장에서 범인을 잡던 중 매튜의 총에 맞은 소녀가 사망하고 경찰을 그만두고 이혼을 했다. 그는 불법 체류자인 창녀에게 주기적으로 돈을 갈취한다는 혐의를 받는 경찰 제리 브로드필드의 일을 맡게 된다. 의뢰인의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창녀와 접촉을 시도한다. 창녀 포샤는 뭔가에 두려움에 떨면서 제리 브로드필드가 비리 경찰에 관한 정보를 검사에게 넘기려 한다고 전한다. 매튜는 둘 사이에 어떤 거래나 비밀이 있는 걸 직감한 채 돌아선다.

 진짜 사건은 다음 날 벌어진다. 포샤의 시체가 브로드필드의 아파트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제 매튜는 포샤를 죽인 브로드필드의 진짜 적이 누구인지 밝혀내야만 한다. 브로드필드를 밖으로 유인하고 그 시각 포샤를 죽인 것이다. 누구라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경찰은 자신들의 비리를 고발하는 브로드필드의 편이 아니었다. 그러니 매튜는 자신이 직접 범인을 잡아야 했다.

 어디서든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인할 수 있는 지금이라면 브로드필드는 바로 감옥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배경은 통신수단이라곤 공중전화와 자동응답기가 유일한 시절이다. 매튜는 브로드필드를 소개받은 작가 퍼맨과 과거 경찰이었던 친분을 이용해 수사를 진행한다.

 매튜는 뇌물로 부를 축적한 브로드필드가 비리 경찰 명단을 넘기면서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생각한다. 포샤가 유명 인사와 접촉하며 정보원 역할을 한 사실을 확인하고 알고 지내는 창녀를 찾아간다. 그녀를 통해 정계나 정부 관계자의 치부를 알게 된다. 저마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서로가 얽혀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 이상해요. 모두 다르죠. 가끔은 성적 취향이 특이할 때도 있고, 가끔은 또 다른 면에서 기이한 점이 드러나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모든 사람은 괴짜예요. 당신, 나, 세상사람 전부가 다 그래요.” 160쪽

 빠른 전개나 복잡한 구성, 놀랄만한 반전을 기대하는 이에게는 조금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묘한 분위기에 취할 수밖에 없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술을 찾는 무면허 탐정 매튜에게서 전해지는 쓸쓸한 감정은 이 가을에 취하기에 적절하다. 오직 전화기를 통해서만 감정을 전달할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마찬가지다. 마치 한 편의 주말의 명화를 보는 듯 추억에 빠져들 소설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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