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슬픔을 추리소설로 말하다
고통과 슬픔을 추리소설로 말하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10.07 0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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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오카 히로키의 『귀동냥』

 

[북데일리] 추리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아마도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떤 방법으로 단서를 찾아 범인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사건 현장의 주변을 탐색하고 증거가 지목하는 용의자에게 동기가 있다면 아주 쉽게 해결될 것이다. 물론 말처럼 간단하다면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는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할 터. 사건에 독자를 몰입시키면서 범인에 단서는 찾지 못하도록 하는 게 가장 좋은 추리 소설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가오카 히로키의 <귀동냥>(2013. 레드박스)은 높은 점수를 받을 소설이다.

 책은 4개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네 편 모두 잔혹한 사건이 등장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니 당연 읽기 힘들 정도의 참혹한 묘사는 없다. 오히려 담담하고 따뜻하다. 그건 사건의 범인이 아닌 사건의 피해자와 그 주변의 사람들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경로이탈>은 제목 그대로 구조를 나간 구급차가 경로를 이탈하는 이야기다. 환자의 상태를 생각하면 빨리 병원으로 가는 게 맞을 터. 환자는 칼에 찔린 검사였다. 그는 구급대장 무로후시의 딸이 당한 교통사고를 담당해 가해자를 불기소한 검사였다. 병원을 찾다 교통사고의 가해자였던 마스바라에게 연락하지만 퇴근 중이라며 거절한다.

그 뒤로 무로후시는 무전을 무시하고 맘대로 병원에 도착한 후 다시 되돌린다. 미래의 장인이 될 무로후시를 하스카와는 이해할 수 없다. 구급대원이라는 책임감을 버리고 딸의 복수를 위한 행동이었을까? 아니다, 심장이 좋지 않아 발작을 일으킨 환자 마스바라를 찾기 위한 방법이었다. 검사가 위급하지 않았기에 둘을 모두 살리기 위해서다. 끝까지 읽고 나서야, 전체의 그림을 볼 수 있는 놀라운 구성이다.

 표제작 <귀동냥>의 주인공 게이코는 형사로, 동료였던 남편을 잃고 딸과 함께 산다. 언제나 바쁜 엄마 때문에 딸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같은 동네에 도둑이 든 사건이 발생하고 게이코가 체포했던 요코자키가 용의자로 체포된다. 게이코는 묻지마 살인 사건에 집중해야 하기에 요코자키한테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자신에게 보복을 할까 두려워하는데 요코자키가 면회를 신청한다. 그는 게이코에게 진짜 범인을 알고 있다며 이미 경찰에서도 알고 있을 거란 이상한 소리를 한다. 놀랍게도 진짜 범인이 잡혔고 노숙자였던 요코자키는 목격자였던 것이다. 소설은 마치 과거에 범죄자였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의심하는 모두에게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사람. 자신은 요코자키를 그렇게 인식했다. 냉혈한 인간이라 당정 지었다. 하지만 스토커 사건만으로 그의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 되었는지도 모른다.’ 104쪽

 화재 현장에서 갓난 아이를 발견한 소방대원이 아이를 방치한 엄마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하는 <899>, 술에 취해 자전거를 운전하다 실수로 한 소녀를 죽게 만든 전과자가 갱생 시설에서 생활하다 재취업까지 결정되었지만 끝내 소녀와 같은 방법으로 자살을 하는 <고민 상자>까지 소설의 이야기는 구급대원, 형사, 소방대원, 갱생 시설 원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들은 모두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이를 지켜보며 상처를 함께 견뎌야 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작가는 누군가가 아니라 당사자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고통과 슬픔을 추리 형식을 빌려 말한다. 범죄자나 피해자가 아닌 그저 누군가의 삶에 대해서 말이다. 때문에 이 소설이 특별하다. 작가는 사회가 보듬어야 할 그들의 삶을 지켜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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