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지킬과 하이드'
우리 안의 '지킬과 하이드'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9.09 1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프케 로렌츠의 『타인은 지옥이다』

 [북데일리] 창백한 얼굴의 여인과 그 곁에 꽂힌 칼이 섬뜩하다. 읽기도 전에 소름이 돋는다. 과연 저 여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공포와 두려움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것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어떤 이는 그것의 지배를 받고, 어떤 이는 그것을 지배한다. 문제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거다. 공황장애를 앓는 이가 점점 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의지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비프케 로렌츠의 <타인은 지옥이다>(보랏빛소. 2013) 속 주인공 마리도 그러하다.

 서른여덟살의 마리는 딸과 남편을 둔 평범한 유치원 보육교사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진 건 딸을 잃은 후 부터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딸을 잃고 남편과도 헤어지고 심각한 우울증을 앓으며 강박 증상에 시달린다. 일상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어 집 안에 갇혀 살면서도 세상과 소통을 위해 동호회에 가입한다. 그곳에서 ‘엘리’라는 친구의 도움으로 많이 호전된다. 용기를 낸 마리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남자 친구 패트릭에게 자신의 모든 증상을 털어놓는다. 파트릭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질까 두려운 마리를 안심시킨다.

 “우리 중에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누구나 가끔씩 끔찍한 상상을 하잖아. 우리는 누구나 어떤 면에서 지킬과 하이드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잠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야. 가끔은 그런 생각들이 24시간 동안이나 내 머릿속을 지배한다고.” (248쪽)

 그런 패트릭을 마리가 잔인하게 죽였다면 믿을 수 있을까? 마리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말았다. 놀랍게도 술에 취해 잠든 패트릭을 죽였지만 마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치료감호소에서 마리는 팔켄하겐 박사에게 상담과 치료를 받으며 마리는 점점 자신이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뒤늦게 전 남편 크리스토퍼가 찾아와 함께 상담을 진행한다. 크리스토퍼는 작가 파트릭과의 첫 만남부터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의심을 갖는다.

 정말 마리는 살인을 했을까? 소설은 이제 강박 증상에 대한 이해와 마리의 범행 진위 여부에 초점을 맞춘다. 치료감호소라는 공간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정신분열, 이중인격을 앓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말이다. 마리는 분명 그들과 달랐다.

 “사람의 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앞머리 쪽에 충동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자리 잡고 있어요.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을 그대로 행동에 옮기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강박증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 부분이 과도하게 활동적입니다. 그러니까 특히 더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죠. 연구에 따르면 폭력범의 경우에는 정반대였어요. 전두엽 부분이 거의 활동하지 않거나 전혀 활동하지 않아서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범죄도 거침없이 저지르는 거고요. 간단히 말해서 강박증 환자의 경우에는 이런 내부의 차단기, 정지 표지판이 다른 사람들의 경우보다 휠씬 더 잘 작동한다고 보면 됩니다.” 141쪽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마리에겐 그런 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마리의 기억을 토대로 크리스토퍼는 결정적 증거를 찾아오고 거대한 반전이 이어진다. 강박증이라는 소재를 살인과 연결시켜 흥미를 돋우지만 결국 작가가 전하고 싶은 건 강박증을 앓고 있는 이들에 대한 위로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싶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