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아버지 찾아 삶속으로
자살한 아버지 찾아 삶속으로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9.09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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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북데일리]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이야기는 책이나 영화를 통해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만화 형식을 빌려 아버지의 삶을 들려주는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길찾기. 2013)도 그렇다.

 2010 스페인 국립 만화대상을 수상한 만화는 ‘내 아버지는 2001년 5월 4일에 자살했다.’ 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남겨진 아버지의 글을 통해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저자는 아버지의 글을 통해 아버지의 삶 속으로 스며든다. 아니, 그 자신이 아버지 안토니오가 된다.

 스페인의 작은 시골에서 땅은 아주 귀하다. 안토니오에게도 마찬가지다. 내 땅을 갖기 위해 일했고 담을 만든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더 넓은 세상이 궁금했다. 멋진 자동차를 운전하며 사는 게 꿈이었다. 운전면허를 따던 날, 공화국이 선포되었고 의용군이라는 다른 세계로 합류한다. 운전을 하며 전쟁터를 누비며 하나 둘, 동지들의 죽음을 목도한다. 혁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 싶었기 때문에 정부와 맞섰던 건 아닐까.

 스페인의 내전은 안토니오의 생을 변화시켰다. 도망자와 노예나 다름없는 생이 이어졌다. 어디에도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그의 곁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생과 사를 함께 했던 동지, 일꾼이 아닌 가족처럼 돌봐준 농장주, 그들을 통해 숨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투쟁에 대한 의미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최선의 선택은 이제 투쟁을 포기하는 것…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을… 최선의 선택은 내가 따랐던 용감하고 위대한 사람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는 것… 그의 신발도 함께… 최선의 선택은 그 시절을 지우는 것이다… 숭고한 사상과 함께 내가 날아오를 수 있었던 그 시절을… ’(123~124 쪽)

 행복은 여전히 멀었다. 결혼을 했고 아들을 얻었지만 비루한 삶은 끝나지 않았다. 아내와 갈등은 심해졌고 결국 요양원을 선택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전쟁과 혁명의 삶을 살았다. 좋아하는 자동차를 운전하며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고 싶었던 소년은 영혼을 도둑맞은 낡은 생을 놓고 싶은 노인이 되었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 날아오를 때 그는 진정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향수와 분노라는 공통된 감정이 우리를 연결했다. 우리란, 그 위대한 사상을 따라 행동한 소수의 생존해 있는 사람들과 지금은 완전히 잊혀진 세대의 가족들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들도 있다. 자살한 부모의 자식들, 끔찍한 시골의 삶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 동업자에게 사기 당한 사람들, 뒤늦게 이혼한 사람들, 양로원에 버림받은 사람들… 더 넓게 보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우리는 이 유대 속에서 그동안 써왔던 가면을 벗고, 자신의 가장 연약한 얼굴을 보였다. 우리는 상처 때문에 흉터진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동맹과 같았다. 아버지로부터 혹은 애인, 친구, 희망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 그리고 오랫동안 속죄 속에서 자신의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소외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동맹말이다.’ (에필로그 중에서)

 어떤 시대든 아픔이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그 아픔을 함께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 여부다. 그렇기 때문에 안토니오의 삶은 과거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안토니오를 기억해야 하며 그들의 슬픔을 위로해야 할 책무를 이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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