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찌찔한 청춘 봤는가?
이토록 찌찔한 청춘 봤는가?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9.05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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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돈리비의 <진저맨>

 

[북데일리] 일반적으로 위기가 왔을 때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적극적으로 그 위기를 이용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거나 주저앉는 것이다. 만약 당신의 경우라면 어떤 쪽에 속하는가? 물론 위기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J.P. 돈리비의 <진저맨>(2013. 작가정신)의 주인공 데인저필드는 후자에 속한 인물이 분명하다. 2차 세계 대전 후 불황의 시대를 사는 모든 청년이 그처럼 방탕한 삶을 살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데인저필드는 스물일곱 살의 아일랜드 더블린의 법대생으로 아내와 딸을 있다. 결혼을 했으니 어엿한 가장이며 법을 공부하고 있으니 뭔가 거대한 비전을 있을 거라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그는 게으르고 무기력한 사람이다. 술을 좋아하고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탐하는 책임감은 전혀 없는 청년이다. 변기가 막히고 먹을 게 떨어져도 나 몰라 하며 자신만의 쾌락에 빠져 지낸다. 그런 남편을 믿고 살 아내는 없다는 걸 증명하듯 아내 매리언은 집을 나가 시부모의 도움으로 집을 구해 생활한다. 데인저필드는 매리언에게 용서를 구하고 슬그머니 그 집에 들어간다. 변한 건 없다. 역시나 폭음은 계속되고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며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진다.

 매리언이 다시 떠나자 데인저필드는 집에 세 들어 사는 미스 프로스트를 유혹하며 함께 영국으로 떠나자고 말한다. 그녀는 아내가 있는 남자와 관계를 갖은 일에 죄책감을 느낀다. 소설에서 그를 제외한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 데인저필드의 유혹에 넘어간 세탁소 여직원 크리스, 일자리를 찾아 프랑스로 떠난 친구 케네스, 이쯤 되면 모두가 궁금하다. 데인저필드는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말이다.

 “우리는 타고난 귀족인 것 같아. 아직 우리 시대가 오지 않았는데 이 세상에 너무 일찍 태어났어. 눈과 입으로 바깥세상 사람들한테 핍박받으려고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케네스, 나 같은 사람은 온갖 부류의 사람들한테 직장直腸으로 학대당하지. 전문적인 부류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도 사실 이 부류에 들어가고 싶지만, 그들은 나를 비웃고 쫓아내고 싶어 해.” 314쪽

 그의 말처럼 그가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다른 삶을 살았을까? 전후라는 시대적 불안이 그가 눈부신 청춘의 시간을 허비하는 방종한 삶을 대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가 영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심 그곳에서 변화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작가는 철저하게 나의 바람을 무시했다. 돈 많은 아버지를 둔 탓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데인저필드는 영원히 철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안타까운 건 사실이다. 그가 느끼는 권태와 절망은 현재를 사는 치열한 청춘에게는 어떤 느낌일까. 이런 부분은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데인저필드도 그저 아픈 청춘에 불과한 것인가? 아, 정말 어지러운 소설이다.

 “나는 종종 쉰세 살이 된 기분을 느낍니다. 그리고 드물기는 하지만 때로는 스무 살로 돌아간 기분도 들어요. 요일과 마찬가지에요. 화요일인데 꼭 토요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아니면 일주일 내내 금요일만 계속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요. 요즘 나는 줄곧 일흔 살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어요. 하지만 서른네 살은 멋진 나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스 프로스트, 한 잔 더 마셔도 괜찮겠습니까?” 282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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