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하게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희미하게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8.12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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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소영의 소설집 <개미, 내 가여운 개미>

 

 [북데일리] 민트색 바탕에 노란 아이스크림에 시선이 닿는다. 까만 작은 개미를 알아보는 건 그 다음이다. 아이스크림이 중요하지 개미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개미를 먼저 볼 것이다. 류소영의 소설집 <개미, 내 가여운 개미>(2013. 작가정신)는 개미 같은 사람들, 그러니까 희미하게 존재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표제작 <개미, 내 가여운 개미>는 화자의 사돈인 신주연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얼만 동안 같은 집에서 살았던 그녀는 학원강사를 하며 폭식증을 앓고 있었다. 한 밤 중에서 음식을 먹는 모습을 화자에게 들키고 난 후 둘은 전보다 가까운 사이가 된다. 폭식의 원인으로 심리적인 처방을 받은 그녀는 어린 시절 개미를 먹는 모습에 화를 낸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살아온 그녀에게 무엇을 먹는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누구도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건 전부였을 것이다.

 ‘세상에 대해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철저히 무색무취하고자 했으며, 언제나 묵묵하게 자기 속도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그녀는 한 마리 개미처럼 느껴졌다.’ ( 59쪽)

 묵묵하게 자기만의 무언가를 지키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한 마리의 작은 개미가 겹쳐진다. 류소영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그러하다.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나의 삶을 들려준다. 친구와 화자의 대화로만 구성된「윤미와 춤을」에서 주인공은 윤미다. 화자는 집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여동생이 혼자 달리기를 하고 춤을 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그런 착각을 한다. 다 안다고 믿는 것이다.

 <옷 잘 입는 여자>는 화자가 직장동료인 윤세연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다. 화자는 저녁 일곱시부터 새벽 다섯 시까지 일하는 직장에 다닌다. 윤세연은 사내에서 옷 잘 입는 여자다. 말이 많거나 웃음이 많지 않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이다. 화자는 우연히 윤세연과 대화 중 그녀에게 아픈 어머니가 있다는 걸 안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 직장을 떠난다는 상상은 할 수 없다. 현실을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곁에 존재하지만 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그 존재를 쉽게 잊는다. 하여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한다. 취업준비생 화자가 ‘입 안에 빨래 많이 꽂아 넣기’ 란 이상한 대회에 참석한 이야기<기록>이나 갑자기 가출한 시어머니로 인해 그녀에 대해 생각하고 가족 간의 관계를 점검하는 <또 밤이 오면>이 그렇다.

 그런가하면 부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사진처럼 기억을 동원한다. 댐이 들어서 수몰 예정인 마을에서 남겨진 것들을 눈으로 보고 그것의 존재를 기억하려는 <물소리>, 바뀐 전화번호로 지속적으로 걸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로 예전의 사용자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기억할 만한 지나침>은 어떤 안간힘이 전해져 서글프다.

 ‘눈 감고 있는 ‘수’ 의 얼굴을 바라본다. 한문 책에 코를 박고 틀어박혀 있을 때 ‘수’ 아버지의 표정이 저런 것이 아닐까. 잠도 몰두해서 자는 듯이 눈썹 선이 긴장되어 있고, 무엇인가에 토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입꼬리가 내려가 있다. 직장 생활에 파묻혀 지내는,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아직도 최악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내 또래의 샐러리맨들을 연민하듯이, 그런 연민의 눈으로 견디고, 아이가 태어나면 내 어미, 내 어미의 어미, 또 더 더 아득한 어미들이 그랬듯 아이의 생모로서 견디고, 혹시 이 기계성의, 아니 아니, 이 식물성의 남자가 작으나마 따뜻함을 보여준다면 놀라며 감동하며 견디며…… 그렇게 세월이 흐를 것이다.’ (<꽃마차는 달려갑니다>, 195쪽)

 기억이 생성되고 소멸하듯 존재도 그러하다. 사랑이 아닌 결혼을 선택한 세 쌍의 신혼부부의 이야기 <꽃마차는 달려갑니다>의 한 구절처럼 우리는 과거란 존재를 잊는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현재일 뿐이다. 한때 선명했던 누군가는 점점 희미해진다. 어쩌면 우리 삶이 그럴지도 모른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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