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절망' 치매 환자로 산다는 것
'고독과 절망' 치매 환자로 산다는 것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3.08.07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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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살인자의 기억법>중에서

[북데일리] 김영하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 2013)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치매 환자의 절망적이고 고독한 상황 묘사가 인상적이다.

[포스트잇] “치매 환자로 산다는 것은 날짜를 잘못 알고 하루 일찍 공항에 도착한 여행자와 같은 것이다. 출발 카운터의 항공사 직원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바위처럼 확고하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태연하게 카운터로 다가가 여권과 항공권을 내민다.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죄송하지만 하루 일찍 오셨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직원이 잘못 봤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오.”

다른 직원까지 가세해 그가 날짜를 잘못 알았다고 말한다. 더 이상은 우길 수가 없게 된 그는 실수를 인정하고 물러난다. 다음날 그가 다시 카운터에 가서 탑승권을 내밀면 직원은 똑같은 대사를 반복한다.

“하루 일찍 오셨네요.”

이런 일이 매일같이 반복된다. 그는 영원히 ‘제때’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한 채 공항 주변을 배회하게 된다. 그는 현재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그 어떤 곳, ‘적절치 못한 곳’에서 헤맨다. 아무도 그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외로움과 공포가 점증해가는 가운데 그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p.126)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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